사적공간이라 생각하지만…
페이스북에 올린 남편 불륜
순식간 확산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과시욕에… 모욕 주려 노출
일상 미화가 ‘위선’ 스트레스로
익명성에 숨은 타인 비방 큰코
사실이라도 명예훼손 가능성
몇 달 전 한 네티즌은 친구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육개장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장례식장’, ‘육개장’, ‘그래도 맛은 있다’, ‘이 정도면 먹스타그램(먹다와 인스타그램의 합성어) 중독?’ 등의 장난스러운 해시태그(# 뒤에 단어를 쓰면 같은 주제끼리 검색하게 모아 줌)를 달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SNS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핵심 수단이지만 분별없는 게시물이나 무책임한 댓글은 커다란 폐해다. 자기 세계와 감정에 빠져 절제를 잃은 게시물로 자신은 물론 타인을 곤경에 빠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반인 불륜이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라
30대 여성 A씨의 경우 남편의 불륜을 폭로했다가 뜻하지 않게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8년 연애 끝에 결혼한지 몇 달 되지 않은 신혼이었던 A씨는 남편의 불륜을 구구절절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남편의 불륜 상대인 20대 여대생 B씨가 자랑하듯 A씨 남편과의 데이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격분해 그야말로 SNS 전쟁을 벌인 것이다. A씨 사연은 SNS를 통해 확산됐고, 남편 실명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지경이 됐다. 몇몇 네티즌은 A씨가 올린 B씨 실명과 대학정보를 바탕으로 신상 털기에 들어가 B씨가 재학 중인 대학교 홈페이지에까지 욕설을 올렸다. A씨는 결국 남편과 B씨의 명예훼손 고소로 경찰 출두를 앞두고 있다. A씨는 “달리 억울함을 호소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 교수는 “SNS를 사적 소통공간으로 여겨 사생활을 올리는 것도, 타인의 비행을 비방하는 것도 쉽게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정보가 불특정 다수에게 퍼져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SNS가 대중적인 모욕을 주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자 변호사들에게 ‘명예훼손에 걸리지 않고 글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상담도 꽤 늘었다고 한다. 박순덕 변호사는 “일반인의 경우 명예훼손에 대한 징벌이 대부분 1,000만원 이하로 벌금액수가 크지 않아 쉽게 생각한다”며 “진실한 사실만 적었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퍼져 ‘마녀사냥’으로
지나친 개인정보 노출이 관심과 억측을 낳고, 결국 마녀사냥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자전거 애호가들의 인터넷 카페를 들썩이게 했던 불륜의혹 사건이 그렇다. 온갖 게시물을 자주 올리고, 귀여운 외모로 남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M씨는 같은 동호회 미성년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함께 찍은 것도 아닌데 단지 두 사람이 사진을 찍은 장소가 같다는 점만으로 정황이 부풀려진 것이다. 사실 여부를 알 수 없으나 동호회 회원들의 욕설과 험담까지 이어져 M씨는 끝내 이 카페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지금도 M씨의 사진과 관련 정보들이 인터넷에서 검색된다.
하물며 인터넷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명인들의 사례는 더하다. 변호사 강용석씨와 유명블로거 김미나씨의 불륜 의혹이나 축구선수 송종국의 이혼을 둘러싼 루머는 확실히 밝혀진 게 없지만 대부분 사실처럼 SNS와 인터넷을 떠돌아다닌다. 프로야구 선수 장성우의 전 여자친구가 장 선수를 모욕주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폭로한 야구계 뒷얘기는 엉뚱하게도 유명 치어리더의 얼굴까지 먹칠했다. 박씨는 장 선수와 그의 전 여자친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박씨에 대한 근거 없는 험담을 보고 난 후다.
이창순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가 다양한 자신의 관심이나 욕구를 표출할 수 있는 장이지만 익명성 뒤에 숨어 절제를 잃거나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 ‘좋아요’의 족쇄에 진짜 모습 잃어
최근 8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호주 SNS 스타 에세나 오닐(19)의 고백은 경각심을 일으킨다. 오닐은 그동안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에 올린 2,000여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모두 삭제하며 “SNS는 진짜 삶이 아니다”고 외쳤다. 그는 “완벽한 소녀가 되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고, 잘 나온 사진을 건지기 위해 수백장의 사진을 찍어야 했다”고 고백했다.
태국 사진작가 촘푸 바리톤도 아름다운 한 단면만 편집해 보여주는 건 진짜가 아니라고 사진을 통해 충고했다. 멋지게 요가를 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 프레임 밖에서 누군가 다리를 잡고 있는 등 멋진 사진의 숨겨진 진실을 폭로했다.
네티즌들의 비아냥은 SNS의 이런 경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페이스북은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나 이렇게 잘 먹고 있다’, 카카오스토리는 ‘우리 애가 이렇게 잘 크고 있다’라는 과시형으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게시물 대부분은 행복한 일상이나 여행 사진 등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이다. 페이스북에 네 살 딸아이 사진과 가족여행 등 사생활 사진을 수 백장 올린 남모(41)씨는 “우리 딸이 이렇게 예쁘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지만 일면식도 없던 거래처 여직원이 아이 사진을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깔기도 했었다는 말을 듣고 섬뜩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을 과장하느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닌 경우가 많고 한편으론 비뚤어진 감정 표출의 통로로 이용된다”며 “소통을 위해 SNS를 활용하지만 진정한 소통이 되지 않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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