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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없으면 병 치료 어떻게…” 환자들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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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없으면 병 치료 어떻게…” 환자들 불안감

입력
2017.07.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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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소아암 등 치료 핵심 원료

원자로 생산 말곤 대체기술 없어

우주개발 원자력 전지에도 사용

“응용 기술 개발 등 막지 말아야”

올봄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는 소아암 환자들의 부모와 의료진의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방사성의약품이 제때 공급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방사성의약품의 핵심 원료인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하는 원자력연의 연구용 원자로가 2년여 동안 정지 상태이고, 재가동 시기마저 불확실해 환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진 것이다.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하려면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낼 때 일으키는 것과 같은 핵분열반응이 필요하다. 새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과 맞물려 우리 사회에 원자력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지만, 사실 현대사회는 전력뿐 아니라 곳곳에서 원자력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원자력이 없으면 당장 암 진단과 치료는 사실상 마비된다. 석유화학과 조선 등 우리나라 주력산업에도 원자력의 산물인 방사선이 필요하다. 원자력 연구자들은 “장기적으로 원전을 줄여가자는 새로운 에너지 정책은 적극 공감하지만, 탈원전 정책이 원자력기술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지 않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신경모세포종을 비롯한 희귀 소아암 치료에 쓰이는 방사성의약품은 방사성동위원소인 요오드로 만든다. 이 약으로 치료받는 국내 환자는 연 200여명. 원자력연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는 이 아이들을 위해 요오드를 공급해왔다. 그런데 내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2015년 9월 보강공사에 들어가면서 가동이 중지됐다. 이후 원자력연은 매년 3억원을 들여 요오드를 수입해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 있다. 수입품은 약 30배나 비싼 데다 오랜 운송 과정에서 구조가 불안정해질 경우 자칫 치료가 아니라 피폭을 일으킬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4월 하나로 공사는 끝났지만, 이후 진행 중인 검증 절차가 탈원전 분위기와 맞물려 엄격해지고 있어 언제 끝날지 예측이 어렵다. 공급 재개를 기다렸던 의료계는 탈원전 정책으로 방사성의약품에까지 불똥이 튈까 우려하고 있다.

갑상샘질환, 신장질환, 암의 뼈 전이 등을 확인하는 핵의학검사에 꼭 필요한 방사성동위원소 몰리브덴도 원자로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는 몰리브덴을 전량 수입한다. 캐나다와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3개국이 몰리브덴 세계 수요의 약 99%를 공급하는데, 이들 원자로 대다수가 오래돼 정비나 중지가 잦다. 언제든지 수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2008년 네덜란드와 캐나다 원자로가 중지된 탓에 국내 주요 병원에서 핵의학검사가 줄줄이 연기되거나 중단된 적이 있다.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부산 기장군에 신형 연구로를 짓기로 했지만, 착공이 1년여 미뤄지고 있다. 박울재 원자력연 책임연구원은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는 대부분 대체 기술이 없어 원자로가 없으면 결국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종 암 치료용 의약품에 쓰이는 방사성동위원소들. 원자로의 핵분열반응을 이용해 생산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각종 암 치료용 의약품에 쓰이는 방사성동위원소들. 원자로의 핵분열반응을 이용해 생산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의료용과 산업용 여러 가지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들어낸다. 지금은 보강공사 후 검증 절차로 가동이 정지돼 있다. 원자력연구원 제공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있는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의료용과 산업용 여러 가지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들어낸다. 지금은 보강공사 후 검증 절차로 가동이 정지돼 있다. 원자력연구원 제공

방사선을 내는 방사성동위원소는 자연에도 존재하지만, 너무 적다. 예를 들어 천연 몰리브덴은 국내 핵의학검사 수요의 5%밖에 감당하지 못한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핵분열반응이다. 핵분열반응의 열을 이용해 터빈을 돌리면 전기가 만들어지고, 핵분열반응에서 나오는 중성자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방사성동위원소가 생산되는 것이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산업현장에도 필수다. 정유ㆍ석유화학 설비에선 반응이나 이동 중인 유체 내부의 상태, 복잡한 배관의 누설 여부 등을 방사성동위원소를 넣어 확인한다. 작은 결함이 하루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실로 이어질 수 있지만, 워낙 규모가 큰 데다 고온고압 환경이 많아 방사성동위원소 없인 결함 유무를 가려내기 어렵다. 대형 하수처리 시설에서도 방사성동위원소가 ‘추적자’ 역할을 한다. 유동성이 낮아 분해가 잘 안 되는 위치를 정확히 찾아낸다. 대형 유조선 등을 건조하는 조선업에선 비파괴검사가 필수다. 구조물에 방사선을 쪼인 다음 반대편 필름에 찍히는 사진을 보면 제작해놓은 구조물을 파괴하지 않고 내부 구석구석까지 살펴볼 수 있다. 병원에서 환자 몸에 엑스(X)선을 투과해 찍은 영상으로 어디가 아픈지 파악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방사선으로 식물을 개량해 만든 신품종은 농가 소득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

우주개발은 원자력전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한 환경에서도 10년 이상 작동하는 원자력전지는 방사성동위원소가 내는 열이나 방사선을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원리다. 미국은 파이어니어, 보이저, 갈릴레오, 뉴호라이즌스 등 26개의 우주탐사선에 원자력전지를 넣었고, 우리나라도 달 탐사에 성공하려면 원자력전지가 있어야 한다. 방인철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원자력 원천기술 확보는 의료와 산업 분야에 반드시 필요하다”며 “발전 부문 축소로 비(非)발전 부문의 응용기술 개발까지 제동이 걸리지 않도록 정책적 조율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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