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등록 : 2017.11.10 11:00

우리 회사에서 ‘한샘’ 사건이 일어난다면

[사소한소다]<57>성폭력 피해자 두 번 죽이는 회사

등록 : 2017.11.10 11:00

서울 서초구 한샘 본사 입구. 연합뉴스

최근 논란이 된 가구업체 한샘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공분을 산 부분은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인사팀장의 2차 가해였다.

지금까지 보도에 따르면 신입 사원 A씨를 상대로 남성 동료가 불법촬영범죄를 벌인 후 이를 처리하며 도움을 준 교육 담당자가 재차 성폭력을 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후 A씨가 회사 법무팀과 사건을 처리하던 와중에 인사팀장이 A씨에게 고소 취하와 사건 은폐를 종용하고 협박하며 성희롱까지 했다는 것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직장 내 성폭력

한샘 성폭행 사건은 인터넷에서 한샘 불매운동으로 번질 만큼 큰 파장을 불러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한샘 성폭행 사건에 대한 올바른 수사를 요청한다’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샘 성폭행 사건에 분노하는 이유는 한샘 이외에 다른 직장에서도 여성들이 쉽게 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 때문이다.

여성 상담센터에 접수되는 직장 내 성폭력 상담 건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전체 상담회수 1,501건 중 직장 내 성폭력 피해가 34.8%(357건)로 성인 피해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했다. 성폭력 가해자가 직장 동료인 경우도 2015년보다 32건이나 늘었다.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상담실이 올해 발간한 2016년 상담사례집에 따르면 지난해 실시한 상담 391건 가운데 79%(309건)가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이었다. 이는 2015년보다 7% 포인트 증가했다.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회사의 극단적인 태도

한샘 성폭행 사건처럼 회사의 부적절한 성폭력 사건 대응이 2차 피해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민우회 관계자는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회사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려고 문제제기를 막거나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후 징계해고나 퇴사 유도로 가해자를 도려내버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직장에서 성폭력 사건의 발생 원인 파악과 재발방지 노력 없이 가해자만 조직에서 도려내면 오히려 가해자를 동정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내 여론을 형성해 피해자를 더 고립시키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민우회 관계자는 “많은 직장들이 성희롱을 개인 간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사건 해결의 주체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한샘 성폭행 사건에 대한 올바른 수사를 요청한다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기업문화실’ 신설로 성폭행 사건이 해결될까

한샘은 지난 8일 성폭행 사건 대책으로 대표이사 직속의 기업문화실을 만들고 사내 성평등 문제를 다루겠다고 밝혔다. 또 임직원 제안과 고충을 접수하는 핫라인을 개설 운영하기로 했다. 여기에 여성 인권과 기업 문화 분야 관련 외부 전문가들로 기업문화 자문단을 구성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한샘의 대책에 대해 사내 성폭력 문제를 정식 절차에 따라 해결해 나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성폭력 사건 조사위원회 등이 별도로 구성됐어야 한다”며 “기업문화실 신설은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핫라인의 경우 접수를 받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인데 누가 전화를 받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접수를 하겠나”라며 “회사 사규 등으로 성폭력 사건 조사위원회 등을 구성하고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위원 명단 등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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