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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오디세이] 애인있어요? '갓현주'있어요!

입력
2016.01.1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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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에서 쌍둥이 자매로 1인 2역을 해내고 있는 배우 김현주. SBS 제공
SBS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에서 쌍둥이 자매로 1인 2역을 해내고 있는 배우 김현주. SBS 제공

한방 스타는 가능하다. 하지만 연기는 한방이 안 통한다. 시청자들은 귀신처럼 배우의 내공을 알아본다. SBS 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 시청자들이 배우 김현주(39)를 열렬히 지지하는 건 지난 20년 동안 그녀가 20여 편의 드라마를 부지런히 오가며 겹겹이 쌓아 올린 연기 내공 때문일 것이다.

특별히 연기를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절절하고 섬세한 내면연기라는 수식이 아직은 버겁게 느껴졌던 김현주. 하지만 ‘애인있어요’를 통해 그녀는 한 여배우의 농익은 연기가 무엇인가를 보란 듯이 풀어헤치는 중이다. 한 자리 수 시청률에도 ‘김현주가 곧 드라마’란 극찬을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준 남편 진언(지진희)을 향해 “네가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나한테, 어떻게 네가 저 따위 계집애 때문에 나한테”라며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폭주하다가도 금세 얼음장 같은 표정을 하고선 “여기까지. 더는 가지마. 여기서 더 가면 너도 네 사랑도 쓰레기 돼”라며 불륜녀 설리(박한별)를 깔아뭉개는 변호사 도해강의 완급조절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사람 좀, 해강이 좀 치워주세요 아버지. 제발 이 사람 좀 버려주세요”라며 아버지에게 무릎 꿇은 남편의 뒷모습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서는 해강의 발걸음에는 쓸쓸함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부족한 처량함 같은 것이 묻어났다. 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30, 40대 여성들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이 저려와 힘들었다”며 하나같이 감정이입을 했다.

이 뿐 인가. ‘애인있어요’에서 그녀는 도해강과 어릴 적 헤어진 쌍둥이 여동생 독고용기로 1인 2역을 ‘지나치게’ 잘 해내는 중이다. 세련됐으나 차갑고 표독스러운 언니 도해강과 달리 뽀글 머리에 촌스러운 패션을 하고선 해맑은 웃음을 짓는 독고용기까지 괴리감 없는 연기를 선보이며 지난 연말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 네티즌 인기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갓현주’(신들린 연기를 뜻함) ‘연기만큼은 대상감’이란 꼬리표는 덤이었다.

1997년 김현주(왼쪽)가 데뷔한 드라마 MBC ‘내가 사는 이유’의 한 장면. 김현주는 극중 술집 여성 춘심으로 등장해 스타덤에 올랐다. 방송화면 캡처
1997년 김현주(왼쪽)가 데뷔한 드라마 MBC ‘내가 사는 이유’의 한 장면. 김현주는 극중 술집 여성 춘심으로 등장해 스타덤에 올랐다. 방송화면 캡처

김현주는 1997년 노희경 작가의 ‘내가 사는 이유’(MBC)에서 엉뚱하고 순수한 성격의 술집 여성 춘심 역으로 드라마 계에 발을 디딘다. 손님들이 짓궂은 질문을 할 때마다 맹한 표정을 지으며 “몰라요, 몰라”를 연발해 ‘미스 몰라양’으로 불리며 화제를 모으더니 같은 해 ‘짝’ ‘레디고’ 등 청춘 드라마에 연달아 캐스팅되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같은 시기 한 우동 광고에서 그녀가 상큼한 표정을 지으며 선보인 “국물이 끝내줘요”라는 유행어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스타가 돼 있는 신데렐라가 따로 없어 보이지만 본인은 그리 순조로운 출발은 아니었노라고 회상한다. 김현주는 과거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오디션이란 오디션은 다 떨어졌을 때 한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영화 등을 소개하는 VJ가 됐다”며 “그것마저도 자질 부족으로 딱 한 회 만에 하차 통보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한 달간의 독한 연습 끝에 담당 PD를 직접 찾아가 기회를 달라고 매달려 다시 VJ 자리를 꿰찬 일화는 유명하다. 이 때가 고작 스무 살 때였다.

KBS ‘가족끼리 왜 이래’ 에서 독신주의 노처녀 차강심으로 등장했던 김현주. 방송화면 캡처
KBS ‘가족끼리 왜 이래’ 에서 독신주의 노처녀 차강심으로 등장했던 김현주. 방송화면 캡처

어쩌면 이때부터 김현주의 연기 욕심이 빛을 발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해 사랑해’(SBS) ‘사랑 밖엔 난 몰라’(MBC) ‘마지막 전쟁’(MBC) ‘햇빛 속으로’(MBC) 등의 드라마에 잇달아 출연하며 20대 초반의 여배우만이 선보일 수 있는 풋풋한 멜로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더니 ‘상도’(MBC)로 첫 사극에 도전한다. 촬영 과정이 험난할 뿐 아니라 연기력이 탄로나기 쉬운 탓에 사극출연을 기피하던 또래 여배우들과 달리 20대 초반의 김현주는 과감히 쪽진 머리를 선택한 것이다.

소설가 박경리의 동명 원작소설을 토대로 한 ‘토지’(SBS) 출연 초창기에는 “독한 최서희 역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란 시청자들의 지적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때도 김현주는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야 하는 데만 집중하겠다”는 말로 논란을 정면 돌파하더니 결국 20%가 훌쩍 넘는 시청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김현주는 나이를 속이지 않았다. 눈가에 패인 주름살을 교묘히 가리며 어려도 한참 어린 20대 남자배우들과 로맨스만 추구하는 ‘양심 없는 언니’는 적어도 아니었다. 부모 대신 키운 남동생 구준표의 사랑을 지지하는 재벌가 여성(KBS ‘꽃보다 남자’)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과 반항기 충만한 딸에 치여 전쟁 같은 삶을 사는 패션잡지 편집장(SBS ‘바보 엄마’)으로, 뼈 아픈 실연의 상처 이후 독신주의로 살아가는 노처녀(KBS ‘가족끼리 왜 이래’)로 김현주는 제 나이에 최적화된 역할을 맡으며 폭넓은 연기변신을 시도해 안방극장을 평정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청춘 스타의 해맑은 이미지를 버리지 않으면서 중년의 원숙함까지 동시에 표현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여배우”라며 “다른 또래 여배우들과 달리 일찌감치 자신의 나이 대에 맞는 연기를 찾아 오히려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애인있어요’에서 김현주는 남편의 외도, 불의의 사고, 기억상실 등을 잇달아 겪는 여성의 섬세한 내면연기를 훌륭히 해내고 있다. SBS 제공
‘애인있어요’에서 김현주는 남편의 외도, 불의의 사고, 기억상실 등을 잇달아 겪는 여성의 섬세한 내면연기를 훌륭히 해내고 있다.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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