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별 기자

등록 : 2017.02.17 04:40
수정 : 2017.02.17 04:40

“김정남 일가 마카오에 안전하게 잘 있다”

등록 : 2017.02.17 04:40
수정 : 2017.02.17 04:40

최근까지 김정남 일가가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콜로안 섬의 고급 빌라 단지

16일 오후 김정남(46)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 마카오 콜로안(Coloane)섬 내 고급 빌라단지.

해변에 인접한 리조트형 단지답게 몇 시간 동안 택시 한 대 오가지 않을 정도로 인적 자체가 드물었다. 김정남은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4층짜리 빌라 3층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비어있는지 초인종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먼지가 가득한 우편함엔 ‘Thomas Leong’이란 이름이 적힌 전기요금청구서와 수도요금청구서가 있었다. 한 주민은 “여긴 억만장자들이 사는 곳”이라며 “김정남이 사는지, 누가 사는지 모른다”고 했다. 한참 동안 단지 안에서 기다려봤지만 북한 사람으로 보이는 주민은 보지 못했다.

김정남이 소유한 마카오 내 부동산 중 실제 거주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 곳은 현재 콜로안섬 빌라단지와 타이파(Taipa)섬 고층 아파트, 구(舊)도심의 8층짜리 아파트다. 마카오는 김정남의 둘째 부인 이혜경(42)이 한솔과 솔희 남매를 키운 곳으로, 우리 정보당국은 김정남 역시 2000년대 초부터 10년 이상 체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날 본보가 마카오에서 김정남 일가의 행방을 쫓았지만, 흔적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의도적으로 (한국인과의) 접촉을 피한 것으로 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솔 솔희 남매 행적이 묘연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이 다닌 것으로 알려진 연국학교(School of Nations) 관계자는 “마카오 교육당국 허가 없이는 학생에 대한 어떤 정보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정남 일가가 이미 마카오를 떠나 중국 베이징 모처로 갔다는 말이 현지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취재과정에 어렵게 만난 김정남의 한국인 지인 말은 크게 달랐다. 마카오 한인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이모(62)씨는 10년 동안 김정남과 100차례 이상 술자리를 가지며 절친한 친구로 지내왔다고 한다. 김정남은 마카오에서 ‘존’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씨는 김정남 일가의 행적과 관련해 “그들은 안전하게 마카오에 잘 있다”며 “여기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로 마카오 정부에서도 최선을 다해 신변보호를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김정남이 마카오로 가기 위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살해된 것에 대해 “한솔이의 장래를 상의하고, 솔희를 보기 위해 오려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솔희는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정남이 평범한 아버지들처럼 솔희를 아끼고 사랑했으며 졸업한 한솔이의 장래를 많이 걱정했다는 것이다.

이씨에 따르면 김정남 일가는 신변의 위험을 많이 느꼈는지 마카오에서도 수 차례 이사를 반복했다.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 집이 4, 5채는 된다고 했다. 거처가 외부에 노출되면 바로 이사를 해 사용하지 않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기자가 들렀던 콜로안의 빌라도 김정남 일가가 2007년쯤 6개월밖에 살지 않았다고 한다. 김정남은 ‘서영란’이라는 이름의 여성경호원도 고용을 할 정도로 안전에 많이 신경을 썼다. 이 여성경호원은 김정남 일가와 같이 살면서 슈퍼마켓 등에 갈 때 마다 동행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나오는 한국 망명설과 관련해서는 김정남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씨는 김정남의 최근 행적과 관련해서는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도 드나들었다고 했다. 주로 카지노에 갔지만 도박 때문이 아니라 시간을 즐기기 위한 오락 목적이었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김정남은 비운의 황태자답게 북한의 정치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고모부인 장성택 사망 이후 괴로워했다는 일각의 보도는 추측이며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세 한탄을 하는 일이 없이 가볍고 재미 있는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푸른 바다의 전설’ 등 한국의 인기드라마를 즐겨봤다고도 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김정남을 마지막으로 만나 밥을 먹은 적이 있다”며 “그때도 그랬지만 행복하다고 늘 말하는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신변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자유로움을 추구한 김정남의 마카오 생활이었던 셈이다.

마카오=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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