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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대변자인가, '벚꽃엔딩' 거품인가

입력
2016.03.2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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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 없이 활동하는 장범준은 방송에 나갈 일이 있으면 건 당 3만 원짜리 메이크업을 받고, 옷도 협찬 없이 자신의 옷을 입고 나간다. CJ E&M 제공
소속사 없이 활동하는 장범준은 방송에 나갈 일이 있으면 건 당 3만 원짜리 메이크업을 받고, 옷도 협찬 없이 자신의 옷을 입고 나간다. CJ E&M 제공

직장인 양희승(35)씨는 밴드 버스커버스커 출신 장범준(27)의 새 앨범 ‘장범준 2집’을 사러 발매 당일인 지난 25일 교보핫트랙스 서울 광화문점 매장에 퇴근 후에 들렀다 빈 손으로 돌아왔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계산대에 ‘‘장범준 2집’ 품절. 추가 입고는 없습니다’란 문구가 적힌 알림판을 보고 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김형순 교보핫트랙스 광화문점 과장에 따르면 ‘장범준 2집’은 이날 오전 9시30분 매장 영업 시작과 동시에 수십 장이 다 팔렸다. 앨범 발매 하루 전인 24일부터 매장 인근에서 밤을 새며 대기한 사람을 비롯해 100명이 넘는 팬들이 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광화문역 3번 출구에서 대기해 순식간에 앨범이 동이 난 것이다.

‘장범준 2집’ 품절을 알리는 알림판. 국내 최대 오프라인 음반매장 중 한 곳인 서울 광화문 교보핫트랙스도 ‘장범준 2집’을 없어서 못 판다. 양승준 기자
‘장범준 2집’ 품절을 알리는 알림판. 국내 최대 오프라인 음반매장 중 한 곳인 서울 광화문 교보핫트랙스도 ‘장범준 2집’을 없어서 못 판다. 양승준 기자

음반 음원 시장 흔든 장범준

2000년대 중반부터 음악 시장이 CD에서 음원 소비 위주로 재편돼 음반을 사기 위해 팬들이 매장에서 밤을 새는 일은 오래 전부터 매우 보기 드문 풍경이 됐다. 봄만 되면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해서 ‘봄 캐럴’이라 불리는 노래 ‘벚꽃 엔딩’(2012)으로 큰 사랑을 받은 장범준이 음악팬들을 음반매장으로 부르는 진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장범준 2집’은 웹툰 ‘금세 사랑에 빠지는’을 담은 책과 두 장의 CD로 구성돼 1만장 한정판으로만 발매됐다.

장범준의 새 앨범을 유통한 CJ E&M 음악사업부문 관계자는 “온라인 예매를 포함해 매장에 풀린 앨범 1만 장이 25일 발매 당일 모두 매진됐다”며 “‘장범준 2집’ 한정판 및 일반판(CD만 판매)제작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한정 생산은 중고가까지 벌써 올려놓았다. ‘장범준 2집’ (2만 5,000원)은 중고 매매 사이트에서 발매 당일부터 정가의 약 5배인 12만 원에까지 거래되고 있다.

장범준은 온라인 음원사이트도 점령했다. ‘사랑에 빠졌죠’ 등 장범준 2집 수록곡들은 드라마 인기를 등에 업고 온라인 음원 차트를 휩쓴 KBS2 ‘태양의 후예’ O.S.T도 밀어내고 3대 음원 사이트(멜론 ·지니·엠넷)에서 27일까지 사흘 연속으로 일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세 음원사이트 톱100를 보면 장범준의 노래가 무려 19개나 올라와 있다. 새 앨범 신곡 15곡과 지난 1월 공개된 ‘시그널’ O.S.T ‘회상’을 비롯해 버스커버스커 1집(2012) 수록곡 ‘벚꽃엔딩’ 등 3곡 등이다. 장범준이 새 앨범 발매와 더불어 4년 전 낸 앨범 수록곡까지 소환하며 올 봄 가요계 음악 시장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한 포털사이트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장범준 2집’ 매매 글들. 정가 2만 5,000원짜리 CD가 12만에 거래된다. 사이트 캡처
한 포털사이트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장범준 2집’ 매매 글들. 정가 2만 5,000원짜리 CD가 12만에 거래된다. 사이트 캡처

“‘응팔’ 추억 들려주는 21세기 가수”

장범준은 2011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3’에서 밴드 버스커버스커 멤버로 준우승을 차지하며 스타가 됐다. 장범준은 같은 프로그램 출신 오디션 스타인 존 박과 로이킴처럼 훈훈한 외모로 여심을 사로 잡은 음악인이 아니다. 가수 자이언티(27)나 래퍼 지드래곤(28) 같이 힙합 스타일의 음악이나 패션으로 유행을 이끈 것도 아니다.

세 살 된 딸을 둔 ‘젊은 아빠’ 장범준은 20대 또래 가수와 달리 ‘버스커버스커 1집’부터 예스러운 감성을 파고 들어 빛을 봤다. 그는 가수 송창식을 떠올리는 구성진 목소리로 통기타를 매고 물 흐르듯 노래한다. 강남의 클럽 대신 골목길(‘골목길 어귀에서’)과 여수의 밤바다(‘여수 밤바다’)같은 토속적인 공간에서 풋사랑을 떠올리고 그 감성을 악보에 옮겨 공감을 샀다. 1970년대 쎄시봉(조형남 윤형주 이장우)에서 시작해 1990년대 고 김광석 이후 끊어진 ‘낭만의 통기타 시대’의 맥을 잇는 전략이다.

장범준의 새 앨범 수록곡 ‘담배’를 들어보면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1988)를 떠올릴 정도로 구수함이 묻어난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장범준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보여준 세대에 대해 노래하는 21세기 가수”라고 표현했다.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스타일과 감성을 기반으로 소소한 얘기를 친숙하게 전달해 공감을 얻고 있다는 얘기다. 장범준은 예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싸구려 커피’를 부른 장기하와도 다르다. 바로 신곡 ‘그녀가 곁에 없다면’처럼 누구나 경험했을 만한 사랑 얘기로 대중적인 공감대를 키운다. 이 노래는 지난 2008년 한 포털사이트 댓글에 달린 사랑 얘기에 영감을 받아 썼다. ‘원수다 소리치다가도 문득 그 사람 뒤통수를 바라보며 저 사람이 내 옆에 없다면 어떨까 생각해보다 코끝이 시려오는 게 사랑’이란 내용이다.

2000년대 후반 들어 군무가 강조되는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이나 자극적인 가사로 점철되는 힙합 음악이 주류로 떠오르면서 노랫말까지 공감되는 곡을 찾기 어렵다. 이런 현실 속에서 독특하진 않지만 장범준의 익숙한 사랑 얘기는 더 많은 사람들에 스며들었다. ‘이야기 없는 노랫말’에 대한 반작용이다. 윤상현 KBS 라디오 PD는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1994) 이후 사라진 청춘의 송가를 청년들이 장범준의 노래에서 찾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엠넷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지난 10년 동안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스트리밍+다운로드)한 노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이 아닌 장범준의 ‘벚꽃 엔딩’으로 조사됐다. 문화평론가인 김헌식 동아방송대 교수는 “장범준 노래는 민요적 특성과 구슬픔이 특징인 소위 ‘뽕끼’가 묻어나 40대 이상 중년층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장범준이 만든 ‘벚꽃엔딩’(2012)이 최근 9년 사이 음악팬들이 가장 많이 들은 곡(엠넷닷컴 기준)으로 꼽혔다. 로엔 엔터테인먼트 제공
장범준이 만든 ‘벚꽃엔딩’(2012)이 최근 9년 사이 음악팬들이 가장 많이 들은 곡(엠넷닷컴 기준)으로 꼽혔다. 로엔 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나친 자기복제” 지적도

친숙함을 기반으로 한 장범준의 솔로 앨범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는다. ‘버스커버스커 1집’ 이후 곡 구성이나 노랫말이 풋풋함에만 기대고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못한 인상을 강하게 준다. ‘슈퍼스타K3’ 이후 CJ E&M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낸 ‘버스커버스커 1집’ 이후 시스템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에 나선 영향도 큰 것으로 보인다. ‘자기복제’가 심해 신선함이 점점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상파에서 가요순위프로그램 연출을 맡고 있는 PD는 “장르의 유사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번 2집을 들어보니 한 앨범 안에 비슷한 느낌의 곡이 너무 많더라”고 꼬집었다.

‘장범준 2집’ 수록곡 중 ‘사랑에 빠졌죠’와 ‘떠나야만 해’는 키만 바꿔 부른 듯 멜로디가 유사하다. 장범준도 밴드가 아닌 솔로 앨범의 완성도가 미흡하다는 걸 아는 눈치다. 그는 “내게 버스커버스커는 큰 존재”라며 “솔로 활동은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유명 가요기획사 대표는 “장범준이 낸 솔로 앨범을 보면 ‘벚꽃 엔딩’ 이후 장범준의 인기에 거품이 좀 끼었다는 생각도 든다”며 “장르의 자기복제를 하더라도 김동률처럼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장범준의 숙제”라고 평가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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