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영식
주필

등록 : 2017.05.04 18:10
수정 : 2017.05.05 09:04

[황영식의 세상만사] 일본도 한몫 한 북풍 차단

등록 : 2017.05.04 18:10
수정 : 2017.05.05 09:04

북핵ㆍ안보불안에 본질적 변화 없어도

대선 판세에 미칠 실질적 영향 제한적

‘트럼프 혼선’ㆍ‘아베 고집’의 합작효과

5ㆍ9 대선 판세가 사실상 굳어졌다. 공식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이내 ‘문재인 대 안철수’의 2강 구도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들어선 ‘문재인 1강’, 또는 ‘1강 2중’ 구도에 특별한 변화가 없다.

홍준표의 막판 기세가 술자리의 화제지만, 어차피 ‘은메달 다툼’에 대한 것이어서 진지한 관심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해의 트럼프 돌풍에 놀란 나머지, ‘내숭 보수층’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동안의 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 ‘없음’ 또는 ‘모름’이라는 응답은 10~20%에 그쳤다. 더욱이 ‘부동층(浮動層)’의 속성상 그 상당수가 투표에 불참하거나 투표하더라도 조직적 지지 결집은 불가능하다. 마음 줄 후보가 마땅찮고, 억지로 마음을 내어도 표를 몰아줄 방법이 없다. 당장 안철수 홍준표 누구도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 ‘전략적 선택’의 잣대를 찾기 어렵다. 소통수단도 이심전심(以心傳心)이 고작이어서 기권과 산표(散票)로 끝나기 십상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선 판세가 이리 분명한 골격을 드러낸 것은 2007년 이명박ㆍ정동영 대결을 빼고는 처음이다. 박근혜 탄핵에 따른 선거구도의 변화가 가장 큰 요인이지만, 팽팽할 듯하던 ‘2강 구도’가 급격히 무너진 이유는 짚어볼 만하다.

그 으뜸이 안철수의 약한 구심력이란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른바 ‘콘크리트표’가 상당 수준에 이른 후보, 탄탄한 지역기반과 거대 정당의 조직적 지원을 받는 후보가 아니고서는 확장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거듭 확인됐다. 홍준표의 기세도 결국 박근혜 탄핵에도 불구한, 영남ㆍ보수 ‘콘크리트표’의 관성이 배경이다.

‘문재인 대세론’에 위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식 선거전 돌입 직전의 ‘안철수 바람’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몰고 온 ‘4월 위기설’과 공명할 경우 문재인 대세론은 크게 흔들렸겠지만, 안은 문의 대표적 약점이라는 대북ㆍ안보 인식을 제대로 파고들기는커녕 그 주도권조차 홍에게 빼앗겼다. 독특한 어법의 ‘홍준표 식 안보장사’는 골수 보수층의 감흥을 불렀겠지만, 훨씬 더 많은 유권자의 ‘색깔론ㆍ북풍 피로증’을 불렀다. 이처럼 안풍과 ‘트풍’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부는 순간 문재인 대세론은 이미 위기를 넘겼다.

‘트풍’의 위력은 트럼프 스스로가 떨어뜨렸다. 애초에 개연성이 낮았던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이 제법 진지하게 거론될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은 못잖은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예측불가능성이 ‘트풍’을 결정적으로 잦아들게 했다.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엉뚱한 위치가 좋은 예다.

일본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아베 신조 총리의 확집(確執)에서 비롯한 과민반응은 한국 유권자들의 대북 인식을 흐리는 강한 간섭요인이 됐다. 지하철 운행 일시 중단, 미국 항모 방호 훈련, 평화헌법 개정 다짐 등은 한국 유권자의 대북 인식을 희석시키고도 남았다. 그 인식의 합리성 논란과는 별도로, 대북 안보 인식에 관한 한 일본은 늘 ‘말리는 시누이’다.

이는 한국일보가 제휴사인 요미우리와 실시해 온 공동여론조사에서 뚜렷이 확인돼 왔다. 지난해 ‘군사적 위협’을 느끼는 나라(복수 응답)로 한국 응답자의 55%가 일본을 북한(81%) 다음으로 꼽았다. ‘위안부 합의’로 양국 정치관계가 복원될 기미를 보인 결과 2015년(61%)보다는 낮아졌지만, 2014년(41%)보다 한참 높다. 그것이 한일관계의 특수성에서 비롯한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현실이다.

한국민의 반일 감정은 대북ㆍ안보 인식을 순식간에 상대화할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미국에 대한 인식까지 비튼다. 북한의 핵ㆍ미사일이 미국에까지 ‘명백히 현존하는 위협’으로 등장했고, 중국까지 미국의 그런 인식을 이해한 마당인데도, 유독 국내에서만 북한의 위협은 여전히 ‘상대적’이다. ‘일본 요인’은 그 동안 분명히 느끼지만 못했을 뿐, 한국정치의 작지만 절대적 변수가 된 지는 오래인 셈이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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