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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사과와 변명의 차이

입력
2015.08.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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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회항'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던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5월 22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땅콩 회항'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던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5월 22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석방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사과문은 오늘날의 윤리를 체험하는 관광명소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야구 커뮤니티에서 상대 팀을 댓글로 조롱한 자부터, ‘땅콩 회항’이라 불리는 사건까지. 일이 터지면 사람들은 맨 먼저 어떤 사과문이 나올지 기다린다. 사과가 깔끔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기꺼이 사과문의 편집자가 된다. 사람들은 사과문을 읽으며 머리를 굴린다. 읽었을 때 사과한 측에서 머리를 굴린 티가 나면 좋은 사과문이 아니다. 자초지종(自初至終)의 비중이 높을수록 분노를 사기 쉽다. 공분에 휩싸인 사과문은 수정된 채 다시 발표된다.

허나 사과의 세계에서 ‘재차’ 사과한다는 것은 실패나 다름없다. SNS로 인해 성공적인 사과의 통과 기준은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 사과 하나하나에는 고도의 지식이 투자된다. 그러다 보니 사과를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은지 세세히 조언하는, 이른바 ‘사과 디자이너(Apology Designer)’들이 생겨났다.

기업의 윤리적 경영·사회적 책무가 화두가 된 지 오래다. 사과 디자이너도 이런 흐름 가운데 나타났다. 이들은 적절한 사과를 위해 유감, 해명, 개선의 내용이 각각 어느 정도 들어가야 할지 정한다. 임원진 개인의 인성으로 저질러진 사고든, 해킹 같은 돌발적인 사고든 사과 디자이너는 기업의 위기에 대처하려면 사과의 매뉴얼을 다져놓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기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저지른 잘못을 더 부풀려 사과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 같은 조치 뒤에 나온 사과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피해자에겐 위안이 된다. 허나 이 까닭에 사과 디자이너의 등장이 반갑지만은 않다.

일단 사과처럼 진정 어린 행위가 어떻게 오염되었는지 개탄하는 일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이는 사안의 겉모습만 들춰낸다. 우선 인터넷을 열면 맞닥뜨리는 사건의 과정을 보자. 사건-분노-사과-용서-보상. 사건의 내용은 다르지만 그 추이는 유사한 편이다. 여기서 사과 디자이너는 ‘사건 디자이너’로서 개입한다. 사건을 정리하는 데 경찰이 동원되고 때에 따라 법원의 판결도 영향을 주지만, 무엇보다 사과 디자이너에게 사과란 사건의 판도를 재조정할 힘의 언어가 된다. 그러했을 때 사과문에 명시된 피해자와 기업이라는 피해자는 엄연히 분리된다. 즉 사과 디자이너에게 피해자는 부당한 일을 겪은 시민이 아니다. 과오든 사고든 그들에겐 매출과 이미지에 타격을 받은 기업이 피해자다.

피해자의 영역이 둘로 나뉠 때, 사과 디자이너들이 강조하는 ‘쿨(Cool)한 사과론’에는 정작 사회적 약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 이들은 공적 사과의 영역에서 사과를 받는 자와 하는 자 사이에 격차가 있음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납작 엎드린 사과가 약자, 을, 피해자, 희생자의 입장에서 최종의 정서적 승리로 인식되어선 안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현실에서 쿨한 사과란 쿨함을 통해 기존의 명성을 누릴 수 있는 자들의 권리일 뿐이다. 고로 사과가 쿨한지 찌질한지 여부를 가리는 것은 핑계대지 않는 문장의 있고 없음이 아니다. 사과문을 첨삭하면서 불쾌와 통쾌라는 감정에 몰두할 때, 사과의 효능을 좌우하는 물적 조건은 은폐된다. 윤리에 대한 예민함만 가중된다.

이처럼 사과 디자이너들은 한 사건의 디자인을 넘어 개인과 사회의 윤리를 디자인한다. 이들도 사회에 대한 비판을 내놓지만, 사과를 둘러싼 대중의 기분 측정에 치우쳐 있다. 이는 비단 사과 디자이너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사과 디자인’의 영향을 받고 있는 오늘날의 비평 문화에 대해 더 관심이 간다. 사건과 사과 이후 벌어지는 대중의 분노를 측정하고, 그 격분의 수위를 조절하자는 비평의 윤리만이 팽배한 지금.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했던 말을 잠시 떠올려본다. 윤리는 투쟁의 형식인가, 투쟁하지 않기 위한 변명인가.

김신식 감정사회학도ㆍ‘말과활’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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