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의 다보스 레터 <3ㆍ끝>
2017년 다보스포럼이 폐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일정과 겹쳐 큰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국가 우선주의’에 의한 ‘세계화’의 위기가 결국 불평등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확인 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한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심화하는 소득 불평등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가정 80%가 2005년 이후 실질 가계소득 감소를 경험했고, 소득 상위 1%에 속한 고소득자들과 하위 50%에 속한 사람들의 평균 소득 격차가 1980년 27대1에서 최근에는 81대1까지 확대됐다. 이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세계화’를 희생양으로 삼아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를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포럼에서 ‘세계화’ 논쟁과 함께 관심을 끈 주제는 ‘만성적인 저성장과 심화되는 불평등’문제였다. 이 두 주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번 포럼에서 열린 400여의 개별 세션 주제는 모두 저성장과 불평등,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중산층의 붕괴, 고용 불안, 청년실업과 기회의 박탈, 사회 불안정 등으로 포럼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이슈였다.
대부분의 세션에서 이 문제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다양한 해법이 제시됐다. 하지만 시원한 해결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들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2%대로, 단기간에 저성장 기조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경제성장이 정체된 가운데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계층 간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면 사회 안정은 크게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성장의 크기나 속도가 아닌 성장의 질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아닐 까.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처음 ‘2017 포괄적 성장과 발전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 세계 14위로 1인당 GDP만으로 평가할 때보다 훨씬 순위가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1인당 GDP가 우리보다 높지만, 높은 빈곤율, 공공부채 확대, 인구구조 악화, 높은 실업률 등으로 사회불안 요소가 많은 프랑스(18위), 미국(23위), 일본(24위) 등이 우리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반면, 높은 소득 수준과 함께 불평등지수가 낮고 두터운 중산층을 확보한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이 최고 순위에 올랐다.
우리 경제도 다른 OECD 국가들과 같이 몇 년째 2%대 저성장에 발목이 잡혀있다. 쏟아지는 부양책에도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보고서는 한국이 OECD 최저수준인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과 낮은 청렴도 등 몇 가지 경제ㆍ사회적 여건을 개선하면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제안한다. 경제ㆍ사회적 여건 개선은 성장률뿐 아니라 개개인 삶의 만족도를 높여 사회안정에 기여하는 효과가 크다. 경제의 절대적 크기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성장의 질을 고려한 포괄적 성장으로 시각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포럼 마지막 날 열린 ‘세계 경제전망’ 세션에서 “포괄적 성장이 아닌 경제성장은 지속가능 하지 않다”고 한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시점이다.
다보스(스위스)=김영훈 세계에너지협의회(World Energy Council)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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