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한 정장과 까만 선글라스, 은은히 풍겨오는 멋스러운 분위기에 웬 ‘꽃중년’인가 싶었다. 품 안의 앙증맞은 강아지 인형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배우 이준혁(44)이 인형과 함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자 분주한 카메라 셔터소리를 뚫고 왁자지껄한 웃음이 흘러넘쳤다.
인형의 이름은 ‘랭’. 그래서 랭을 어깨에 얹은 이준혁은 자칭 ‘내시랭’(낸시랭의 오타 아니다)이다.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세자 이영(박보검)을 보필하는 내시 장훈남을 연기하면서 붙은 별칭이다. 드라마 방영 전 이준혁과 박보검은 한복 차림으로 ‘붐바스틱’ 댄스를 추는 홍보영상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인형 랭도 등장한다. 온라인에는 여주인공 김유정의 얼굴에 이준혁의 얼굴을 합성해 세자와 내시의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한 사진과 영상도 올라온다.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이 시청자들의 눈에 쏙 들었다는 얘기다.
최근엔 영화 ‘나홀로 휴가’ 홍보차 출연했던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재치 있는 19금 입담과 마임 연기를 선보여 온라인을 도배했다. 얼굴은 낯익어도 이름은 낯설었던 이준혁의 존재감을 또렷이 새긴 또 하나의 계기였다. 요즘 박보검과 알콩달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이준혁을 28일 오후 서울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요즘 인지도가 확 올라갔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진 걸 느끼긴 하지만 불편할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어디서 본 사람인데’ 하면서 갸웃하는 반응들이 신경 쓰인다. 내가 먼저 얘기해 줄 수도 없고 답답하다(웃음). 그래서 간혹 동창이라고 착각하는 분들도 있다. 식당에 가면 단골 손님인 줄 알고 ‘요즘엔 왜 자주 안 오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땐 서글플 것 같다.
“좀 무안해질 때가 있긴 하다. 특히 포토월에 섰을 때. 예를 들어 정우성이 등장하면 셔터소리가 ‘파바박 파바박’ 커지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가리지 말라면서 ‘앉아! 비켜!’ 소리도 지르지 않나. 그런데 내가 등장하면 ‘파박’ 소리가 끝이다. 차라리 초대하지 말든지(웃음).”
-가슴 아픈 얘기인데 재미난 에피소드처럼 들린다.
“인생이 원래 웃긴 거다. 찰리 채플린도 말하지 않았나.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요즘 박보검이 초등학생들 사이에 인기 절정이라는데, 아이들이 아빠가 TV에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나(이준혁은 11세 6세 두 아들과 4세 딸을 두고 있다).
“글쎄, 별로 관심 없는 것 같다. 둘째와 셋째는 아직 어리고, 첫째 녀석은 요즘 마인크레프트 게임에 푹 빠져서 정신이 없다. 덩달아 나도 게임에 필요한 지도를 다운로드 받아주느라 머리에 지진 날 지경이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인가 보다.
“사실 아이를 안 낳으려고 했다. 부부가 모두 연극을 하니까 돈이 없지 않나. 그런데 잠깐 누웠다 일어나 보니 아이가 생겨 있더라. 그것도 셋이나(웃음). 물론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라디오스타’에서 사랑 고백을 했던 아내 정진희씨는 연기 활동 계획이 없나.
“아이들 돌봐야 해서 어쩔 수가 없다. 육아는 ‘네버 엔딩’이더라. 가끔 집에서 벗어나 바람을 쐬어주고 싶어서 작은 역할이라도 기회가 되면 출연하라고 얘기하곤 한다.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와 영화 ‘미쓰 와이프’에선 둘이 함께 부부로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의 출연조건이 굉장히 까다롭다. 장소는 서울, 촬영 1회차 아니면 안 한다(웃음). 아이들을 챙겨야 하니까.”
-배우 생활을 오래 했는데 예능 출연으로 인지도가 확 올라간 게 한편으로는 허탈했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감사함이 더 크다. 덕분에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 나는 일 자체에 가치를 둔다. 돈은 그 다음 문제다. ‘라디오스타’는 얻어 걸린 거나 다름없다. 친한 선배들과 편하게 녹화했다. 그런데 방송 출연 후 조금 달라진 게 있었다. 배우 이준혁이 3명인데, 예전엔 드라마 ‘파랑새의 집’에 출연한 이준혁이 메인이었다. 요즘 살짝 지각변동이 생겼다(웃음). 공교롭게도 다음 영화 ‘신과 함께’에 그 이준혁씨도 출연한다더라.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기대된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장내관이 인기다.
“드라마가 잘 된 덕분이다. 무임승차랄까.”
-직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준 현장 사진들도 화제만발이던데.
“그간 소통에 목말랐던 것 같다. 그건 내가 연극을 했기 때문이다. 연극을 할 땐 모든 배우가 분장실을 같이 쓰고 막을 내린 뒤 다같이 퇴근해 술잔도 기울인다. 그래서 주연이든 단역이든 외롭지가 않다. 하지만 (방송과 영화 등) 매체 연기는 좀 다르다. 출연 장면이 없으면 촬영장에 갈 일이 없으니 친해질 기회가 많지 않다. 시간적 여유도 없고.”
-조연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서사가 부족한데 어떻게 연기를 준비하나.
“캐릭터를 납득시킬 수 있는 서브텍스트를 마련해야 한다. 장내관은 경력이 많으니까 아마도 세자를 업어 키웠을 테고 그만큼 정이 들었지 않겠나 상상하는 거지. 놀랍게도 장내관 나이가 스무살인데(웃음), 어렸을 때 몸이 약해 봉침을 맞았다가 얼굴 붓기가 빠진 뒤로 쭈글쭈글해져서 노안이 된 거라고 설정했다.”
-박보검을 아끼는 게 연기에서도 느껴진다.
“보검이는 발광체고 나는 반사체라 보면 된다. 보검이가 빛나야 나도 빛날 수 있다. 보검이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와도 호흡이 좋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력이 있더라. 친화력도 좋고. 투명한 물 같은 친구다. 빨간 물감 떨어뜨리면 빨갛게 물들고, 파란 물감 떨어뜨리면 파랗게 물드는 배우다. 나는 4대강 같은 사람이라 어떤 물감을 떨어뜨리든 색이 발현되기 쉽지 않다(웃음). 배우로서 부러울 때도 있다.”
-동료 배우들을 보면서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나.
“물론이다. 무대에서는 나를 충분히 발화시킬 만한 역할을 많이 연기했는데 매체 연기에선 그렇지 않으니까. 단역이라도 일이 없었던 적은 거의 없지만, 섭씨 100도가 되어 끓기도 전에 내 역할이 끝나 버리니까 배우로서 갈증과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어린 시절 이준혁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영화광이던 아버지 덕분에 시네마 키드로 성장했다. 그는 “1970년대 후반 즈음 국제극장에서 ‘스타워즈’를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당시 경복궁 인근에 있던 프랑스문화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프랑스 영화들은 물론 프랑스에서 제작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일본영화도 섭렵했다. “그때 영화 관람비가 500원이었다. 싸니까 많이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자막이 없었다는 거(웃음). 조그마한 지하 극장의 퀴퀴한 냄새와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그 생경한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영화를 보는 것으로도 부족할 땐 헌책방에서 구해온 영화잡지를 탐독하며 영화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준혁은 무작정 영화사를 찾아갔다. 너무 영세한 곳이라 금방 문을 닫았지만 거기서 만난 선배의 조언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영화 장비와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미리 배워봐야 소용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이 훨씬 더 중요하다. 영화를 하고 싶으면 우선 연극을 해보라”는 얘기였다. 1995년 군 제대 후 대학로로 갔다. 신인 배우들과 신인 연출이 뭉쳐 극단 백수광부를 차렸다. 10여년간 무대를 지키며 ‘늘근도둑 이야기’ ‘야메의사’ ‘백수광부들’ ‘사나이 와타나베’ 등을 공연했다. 그렇게 이준혁에게 “배우는 천직”이 됐다.
-연극을 한다는데 집에선 걱정 안 했나.
“반대가 아주 심했다. 그래서 자동차 정비 기술도 배우고 막노동도 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집에 있던 피아노도 팔았다. 제 값 받고 팔아 다행이다 싶었다(웃음)”
-첫 무대를 기억하나.
“정식 공연은 아니었고 워크숍 공연이었는데 ‘칠수와 만수’에서 만수를 연기했다. 엄마가 만수를 부르면 막을 열고 나가야 하는데 바들바들 떨려서 못 나갔다. ‘내가 왜 연극을 택했을까, 내가 미쳤나’ 별 생각을 다했다. ‘만수야’ 몇 번 불러도 안 나가니까 나중엔 엄마를 연기한 배우의 목소리가 ‘만수얏!’ 하면서 짜증스러워지더라(웃음). 어떻게 공연이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어둠 속에서 모노드라마를 한 것 같았다.”
-그래도 연기가 재미있으니까 연극을 오랫동안 한 것 아닌가.
“무대에 서면 조명빛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소실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주변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내가 완전히 몰입되는 거지. 무언가에 푹 담가졌다가 빠져 나왔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 있다. 마약 같다.”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차원의 감흥인 건가.
“연극에는 삼지안이 있다. 눈이 세 개란 뜻이다. 내가 있고, 캐릭터가 있고, 내가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지켜보는 또 다른 내가 있다. 내가 나를 까먹으면 감상자 입장에서 연기하게 된다. 그러면 관객이 느껴야 할 몫까지 배우가 느끼고 해소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객관의 눈이 필요하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삼지안 저그’라고 있다. 내가 그 용어를 가져다 연극에 접목해 쓰는 거다(웃음).”
2008년 영화 ‘과속스캔들’에서 단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황해’(2010)와 ‘써니’(2011)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타짜: 신의 손’(2014) ‘극비수사’(2015) 등 영화 출연작만 60여편. SBS ‘닥터스’(2016)와 ‘육룡이 나르샤’(2016) ‘미세스 캅2’(2016) 등 드라마 20편에도 출연했다.
이준혁은 유명 마임이스트이기도 하다. 2006년 프랑스로 건너가 세계적인 거리예술극단 일로토피에서 1년 반 동안 활동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영화 ‘늑대소년’(2012)에서 송중기에게 늑대 몸짓을 지도했고, ‘미스터 고’(2013)에선 고릴라 컴퓨터그래픽(CG)의 모션캡처를 담당했다. 리니지 같은 유명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 대부분이 그의 마임을 토대로 탄생했다. 그래서 ‘한국의 앤디 서키스’라고도 불린다. 앤디 서키스는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골룸을 연기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배우다.
이준혁은 배우들의 연기 선생님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8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요즘에도 간혹 연기를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배우들이 있다고 한다.
-마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프랑스에서 마임을 공부한 마임이스트 남긍호 선생님과 우리 극단이 ‘콜라보’ 무대를 꾸민 적이 있다. 선생님과 내가 주인공이었다. 그분의 마임을 처음 보자마자 울었다. 너무 아름다웠다. 몸이 진짜 조각 같았다. 근육이 제각각 이야기를 하더라. 그래서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극단에선 ‘네가 무슨 마임이냐’면서 차라리 씨름을 하거나 투포환을 하라며 말렸다(웃음).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마임을 배웠고, 나중엔 듀엣으로 공연하게 됐다. 선생님과 10년 정도 같이 활동했고 프랑스 극단에도 함께 갔다.
-2010년 이후로 연극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매체 연기를 많이 하는 배우들이 대학로 와서 괜히 둘러보는 듯한 모습이 탐탁치 않았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무대를 지키고 있는 배우들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거든. 괜한 오해를 부르기 싫어서 연극은 당분간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극단에는 아직 소속돼 있다.”
-매체 연기에 뛰어든 이유가 뭔가.
“생계 문제다. 아이가 있으니 타협할 수밖에 없더라.”
-배우로서 소망이 있다면.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나를 다 태워버릴 수 있는 작품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으면 더 좋겠다. 의미와 재미가 만나는 지점에 내가 서 있었으면 한다. 그 순간을 위해 연기하고 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정우진 인턴기자(연세대 사회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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