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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추억… 대구에도 자랑할 거리가 생겼어요"

입력
2014.12.2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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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천시장 옆 350m 골목길

젊은 연인ㆍ쇼핑객 인증샷 물결

달고나ㆍ불량식품 추억의 문방구

밤엔 포차서 김광석과 마주한 듯

대구의 명물로 떠오른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 가면 다양한 모습과 분위기의 김광석을 만날 수 있다. 지역 예술인들이 회색빛 콘크리트 옹벽에 그린 벽화와 각종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대구의 명물로 떠오른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 가면 다양한 모습과 분위기의 김광석을 만날 수 있다. 지역 예술인들이 회색빛 콘크리트 옹벽에 그린 벽화와 각종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1년 365일 가수 김광석(1964-1996)의 노래가 흐르는 길이 있다.

대구 중구 대봉동 달구벌대로 446길 일대. 대구의 동쪽에서 남북으로 흐르는 하천인 신천(新川)의 방천 안쪽에 형성된 오랜 마을로, 이 곳 방천시장은 해방 후 일본 만주 등지에서 귀국한 사람 등이 호구지책으로 장사를 하면서 형성된 전통시장이다. 한때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 3대 시장의 하나로, 점포수가 1,000여 개에 달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지역 대표적 슬럼가로 전락했다. 콘크리트 옹벽 옆 좁은 골목길에는 장정들도 밤에 나다니길 꺼릴 정도였다. 이런 곳이 영원한 가객(歌客) 김광석을 만나 대구지역 대표적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전통시장과 예술이 함께하는 특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났다. 주말이면 하루 5,000명이 넘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대구지역 대표적 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경대병원역에서 동쪽의 수성교 방향으로 5분 남짓 걸어가면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김광석 길)’이 나온다. 남쪽으로 너비 4, 5m, 길이 350m구간이 김광석 길이다. 우리나라에서 대중가수의 이름을 붙인 길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동쪽으로 3m남짓 높이의 콘크리트 벽면에 연이어 그려진 벽화가 눈길을 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이등병의 편지’, ‘바람이 불어 오는 곳’ 등 김광석의 음악을 주제로 한 다양한 벽화와 사진물, 조형물, 시 등 80여 점의 작품이 늘어서 있다. 김광석에 대한 소개와 그의 사랑, 세대공감, 희망 등 각 테마별로 포토존과 자유표현공간, 게시판 등으로 구성해 놓았다.

혹한 속에 잠시 날이 풀린 지난 20일 낮, 김광석 길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 벽화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사람, 자물쇠에 군번을 적어 벽에 걸며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 유독 키가 작았던 김광석 동상 옆에서 사진 찍는 키 작은 사람, 모형 기타를 치며 김광석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젊은이들…. 부산에서 단체관광객을 인솔하고 왔다는 한 여행사 직원은 “몇 년 전만 해도 대구 하면 팔공산 동화사와 갓바위 말고는 어디 갈 곳이 없었는데, 요즘은 김광석 길이 단골메뉴”라고 설명했다.

김광석 길에 가면 추억이 있다. ‘쫀드기’, ‘아폴로’ 등 ‘불량식품’의 대명사격 과자와 종이딱지 등을 진열한 ‘추억의 문방구’도 두세 곳 문을 열었다. 국자에 설탕을 부은 뒤 연탄불에 살살 녹이며 소다를 첨가해 부풀린 뒤 쟁반에 부어 별, 하트 모양 등을 만드는 ‘달고나’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김광석 길은 밤길이 제 맛이다. 은은한 조명 탓에 벽화 하나 하나가 독립된 작품으로 빛을 발한다. 어둠 속에 울려 퍼지는 김광석의 노래는 저절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김광석과 포장마차에서 마주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김광석 길 서쪽 방천시장도 꿈틀거린다. 시장 쪽 술집과 고깃집이 일제히 문을 열기 때문이다. ‘대한뉴스’, ‘대한늬우스’, ‘투뿔’ 등의 상호를 가진 음식점에서는 두꺼운 한우 등심을 토치로 익힌 뒤 술을 부어 불꽃을 일으키는 ‘불쇼’ 등이 인기다. 화가가 직접 구워주는 마카롱 맛도 일품이다.

김광석 길은 예술공간으로 계속 진화 중이다. 골목 구석 구석에 공방이 들어서고, 꽃꽂이, 캘리그라피, 인형 만들기 등을 배우려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 창작하는 사람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 초 만들기, 유자청 만들기, 세라믹페인팅, 아크릴화 그리기, 프랑스 자수, 소원팔찌 만들기 등 창작의 모든 것이 김광석 길 주변에 생기고 있다. 새로 생긴 갤러리에서는 사진전이나 미술전 등이 연중 열린다.

“볼 게 없다”는 대구에도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자신 있게 소개할 곳이 생겼다. 윤희정(25ㆍ대구 수성구)씨는 “서울 등에서 친구가 놀러 오면 김광석 길로 안내한다”며 “지금까지 한 번도 불평하는 친구를 보지 못했다”고 자랑했다.

김광석 길이 태어난 것은 중구청의 전통시장 활성화 차원에서다. 2009년 방천시장 일대 환경 개선을 위해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해 가을 시장상인과 예술가들이 전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한 문전성시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본격화했다. 1단계 가판대 디자인개선, 시장 게이트 설치에 이어 2단계로 2010년 6월부터 최근까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조성사업이 계속 되고 있다.

방천시장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신문을 팔았고, 양준혁 선수가 가방 장사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와 뛰어 놀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김광석도 서울로 이사 간 5살 때까지 살던 곳이다. 중구청은 김우중 길, 양준혁 길, 김광석 길 등을 놓고 고심하다 김광석이 예술과 문화를 통한 시장활성화라는 명제에 가장 잘 맞는 테마라고 여겨 이같이 정했다.

이곳에선 김광석을 추모하는 각종 문화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2011년 김광석 15주기 추모사진전과 추모콘서트를 시작으로 해마다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가 열린다. 올해는 전국 80여개 팀이 출전할 정도로 성황이다. 사랑의 자물쇠, 예술품 판매 등 각종 이벤트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 봄부터는 김광석 모창의 ‘히든 싱어’ 채환이 매주 토ㆍ일요일 방천시장 토마홀에서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중구청은 연말까지 골목방속국을 완공하고 새해부터 매주 금~일요일 하루 2시간 정도 김광석 신청곡을 들려줄 계획이다. 야외공연장 설치와 화장실 신축 등 관광객 편의시설을 확충하고, 김광석 국제포크페스티벌 개최를 추진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도 개발 중이다.

관광객도 집계를 시작한 2012년 6만3,000명에서 지난해는 8만7,500명, 올해는 지난달 말까지 43만4,600여 명에 이른다. 중구청은 정확한 방문객 수를 집계하기 위해 지난 8월 계수기를 설치했다.

낡은 건물도 하나 둘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통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12월 현재 이 일대에서 공사 중이거나 철거한 주택만 5곳이 넘는다. 땅값도 폭등하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골목 서쪽 샛길 주변 땅은 3.3㎡에 300만원이 채 안되던 곳이 지금은 1,000만원이 넘는다. 김광석 길 바로 옆에는 2,000만원을 주겠다고 해도 매물이 없다.

하지만 전통시장 활성화란 목표를 달성했는지는 회의적이다. 토박이 상인들은 이전보다 더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폭등한 임대료는 터줏대감들을 하나 둘 내쫓고 있다. 한 시장 상인은 “관에서는 날씨 좋은 주말 사람이 많을 때 우르르 몰려와서 사진 찍고 ‘방천시장이 살아났다’고 호들갑이고, 주말이면 기획부동산 업자들이 전국의 투자자를 끌고 와 부동산 설명회나 하고 있다”며 “지금 이 시장에서 원래부터 장사하던 사람은 2년 전 절반도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차문제도 해결과제다. 밤이면 시장 내 고깃집 술집 등을 찾아온 손님들과 이곳에 사는 주민들간에 주차를 놓고 얼굴을 붉히기 일쑤다. 중구청은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25억 원의 예산을 확보, 내년부터 50대 규모의 주차장 조성에 나서기로 했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대구=배유미기자 yu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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