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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저주’ 푼 박보검의 결정적 순간4

입력
2016.09.1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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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의 저주’란 말이 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에 출연해 큰 사랑을 받았지만, 차기 작에선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거나 흥행에 실패하는 배우들이 적지 않아 방송가에서 나온 말이다. 시트콤 성격이 두드러진 ‘응답하라’ 속 독특한 캐릭터 안에서 놀다가, 이야기가 강조되는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면 전작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기 쉽지 않다. ‘응답하라 1994’(2013)에서 활약했던 배우 고아라와 정우를 비롯해 ‘응답하라 1988’(2016)의 히로인 혜리 등이 차기 작에서 고전한 이유다.

‘응답하라의 저주’를 푼 배우가 있다. 주인공은 박보검(23)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바둑기사 최택으로 열연했던 그는 차기 작인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박보검이 주인공인 세자 이영으로 나오는 드라마는 지난 6일 18.8%(닐슨코리아 기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다. 순진했던 ‘최택 사범’은 사극에서 ‘사랑꾼’이 돼 여심을 사로 잡고 있다. 배우 박보검의 ‘얼굴’은 이 뿐이 아니다. 그래서 준비했다. 청춘스타 박보검을 만든 결정적 순간4.

▦ ‘츤데레(쌀쌀 맞지만 속정이 깊다는 뜻) 왕세자’ 박보검

박보검이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맡은 이영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역사 속 효명세자(1809~1830)를 모델로 한다. 조선 순조 말기 대리청정을 하면서 세도정치를 억제하고 왕권을 세우려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둬 뜻을 이루지 못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외척 세력을 타파하려는 이영은 궁궐 안에선 항상 ‘날’이 서 있다. 사람을 믿지 못해 좀처럼 마음을 열지도 않는다. 차가울 수 밖에 없는 그를 웃음지게 하는 유일한 이가 바로 내시 홍라온(김유정)이다. 퉁명스러운 세자는 ‘남장여자’ 내시인 홍라온만 만나면 ‘장난꾸러기’가 된다. 저잣거리에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홍라온을 만나 그의 순수함과 따뜻함에 빠진 탓이다. 홍라온이 여자인 줄 모르는 이영은 내시에 자꾸 마음이 쓰이는 게 혼란스럽기만 하다.

때 묻지 않은 표정을 지닌 박보검이 이 혼란을 풋풋하게 연기해 극의 몰입을 이끈다. 외척 세력을 만나면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분노를 머금은 모습과 세자이기에 앞서 청년으로서의 순수함을 동시에 보여줘 재미를 준다.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건 박보검의 로맨스. 극중 이영은 외척 세력의 중심에 있는 김윤성(진영)과 홍라온을 두고 삼각관계를 그린다.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박보검의 ‘상남자’ 같은 모습이 반전이다. “불허한다, 내 사람이다.” 박보검이 김유정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의 손을 잡고 진영을 향해 던진 차가운 말은 방송(5일)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로맨스 드라마의 명대사 반열에 올랐다. ‘우유 같은 남자’ 박보검의 ‘츤데레 로맨스’의 결정적 순간이다.

▦ ‘허당 바둑기사’ 박보검

강렬한 연기가 인상 깊은 것도 아니고, 배꼽을 뺄 정도로 재미있어서도 아니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출한 신원호 PD는 박보검을 ‘응답하라 1994’에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정말 착해서”라고 말했다. “오디션 중에 한 번이라도 안 웃기면 캐스팅을 안 했는데” 캐스팅을 한 유일한 사례였다고. 그만큼 박보검의 순수함이 인상 깊었다는 얘기다. 신 PD에 따르면 박보검은 오디션에 촌스러운 옷을 입고 오란 말에 실제로 후줄근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나타났다. 그는 박보검을 ‘바른 생활 사나이’라고도 표현했다. 휴대폰 문자까지 바르고 정확하게 보낸단다. “너무 착해서 오히려 재미있었다”는 게 신 PD의 말이었다.

이렇게 캐스팅 된 박보검은 ‘최택’ 그 자체였다. 박보검은 바둑 밖에 모르는 순수 청년을 능숙하게 소화했다. 텁수룩한 머리에 멍한 표정. 당혹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코끝을 찡긋거리며 어색함을 지웠던 모습은 풋풋했다. 덕선의 보살핌은 물론이고 정환과 선우(고경표), 동룡(이동희) 등 동네 친구들이 항상 신경 써줘야만 하는 유약한 존재였던 그는 ‘응답하라 1988’에서 유난히 빛나는 별이 됐다. “아, 씨X”. 바둑경기에서 진 우울감을 친구에게 욕을 배워 해소해 실소를 자아냈던 장면은 박보검이기에 가능했다.

▦ ‘싸이코패스 살인마’ 박보검

입 꼬리만 올린 채 웃는 모습이 차갑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있고 사슴 눈망울을 한 사내는 연쇄 살인범이다. 그는 살인 현장에 자신을 알리는 단서를 흘린다. 그에게 살인은 ‘놀이’다.

박보검은 2015년 방송된 KBS2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서 싸이코패스인 변호사 정선호를 연기했다. 선한 얼굴 뒤에 숨겨진 광기는 섬뜩했다. 2011년 영화 ‘블라인드’에서 시각장애인으로 나왔던 김하늘의 남동생으로 연기를 시작해 ‘명량’(2014)에서 이순신(최민식) 장군에게 토란을 건넸던 소년의 서늘한 반전이었다. ‘연쇄살인범’은 박보검이 맡은 첫 성인 캐릭터였다. 그는 영화 ‘차형사’(2012)에서 강지환의 아역으로 나왔고, 드라마 ‘원더풀 마마’(2013)에서도 배종옥의 철부지 막내 아들을 맡아 그간 소년으로만 살아왔다. ‘너를 기억해’에 출연한 박보검이 “학생에서 처음으로 정규직이 됐다”며 너스레를 떤 이유다. 이 작품에 ‘소년 박보검’은 없다. 그는 변호사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직접 변호사를 찾아갔고, 미국 드라마 등을 보며 살인자의 서늘한 분위기를 익혔다.

▦’남성 캔디’ 박보검

박보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긍정’이다. 연예계에서도 워낙 밝고 예의가 바른 걸로 유명해 심지어 남자 연예인들도 그를 보면 ‘순둥이’가 된다. 박보검은 최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 코너 ‘1박2일’에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가수 겸 방송인 김종민을 결국 놀이기구에 태우는 데 성공한다. 김종민은 “박보검 표정이 온화해서” 안 탈 수 없었다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보검의 선한 모습에 래퍼인 데프콘은 그에게 물도 떠다 준다.

‘긍정 소년’ 박보검의 모습이 극대화된 곳이 영화 ‘차이나타운’(2014)이다. 박보검은 사채 빚을 남기고 사라진 남자의 아들 석현으로 나온다. 온 집안에 압류로 인한 ‘빨간 딱지’가 붙은 상황에서도 요리사가 되려는 꿈을 버리지 않는 의지의 청년이다. 그는 빚 독촉을 위해 찾아온 일영(김고은)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심지어, 밝게 웃으며 파스타까지 만들어준다. 구김살 없는 청년의 ‘끝판왕’이 따로 없다. 박보검은 극중 어둠의 세계에서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몸을 던지며 살아온 김고은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끈다. 실제 교회에서 반주를 하기도 한 박보검이다. ‘교회 오빠’의 선한 모습과 극중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겹쳐 더 친숙함을 준다. 박보검도 ‘차이나 타운’ 개봉 전 인터뷰에서 “석현이와 내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힘들어도 좌절하지 않는 성격”이 비슷하단다. 청년 박보검의 실제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사진=KBS,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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