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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칼럼] 무신론자의 추석

입력
2016.09.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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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음덕을 믿지 않는 시대

형식만 남은 제례에 동원되는 여성

詩 ‘후손들에게’를 떠올린다

현대는 무신론자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다. 상당수의 현대인은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을 믿더라도 조상의 음덕을 진지하게 믿지는 않는다. 조상신이 제사를 지내 준 후손에게 복을 베풀어줄 것이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죽고 난 뒤 후손이 제삿밥 차려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밀렵의 위험을 느낀 코끼리처럼 차라리 후손을 낳지 않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죽은 뒤에 남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기억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도 추석이 오면, 도리 없이 고향이나 시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낯선 친척을 만나고, 그들의 차례 설거지와 집 안 청소 하기를 요구받을지 모른다.

이런 제사의례가 범사회적으로 정착된 것은 아주 오랜 옛날이 아니라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조선 후기의 일이다. 국가로부터의 공공 서비스를 크게 기대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조상 중에서 출세한 인물만 골라 시조로 기리고, 각종 의례를 준수하며 자신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러한 의례에 밝아 명성을 떨친 강씨 부인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자식을 많이 낳았으나 모두 그녀보다 먼저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의례와 도덕의 전문가라는 명성 덕분에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자신의 문집을 후대에 남길 수 있었다. 남성 지배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이 공적 발언권을 가지려면 남성들이 인정한 가치를 구현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아예 보통 남성들이 범접할 수 없는 신 내림을 받아 영험한 무당이 되어 버리거나. 강씨 부인은 남성들이 인정한 가치를 받아들여 그 속에서 인정받는 길을 택했다. 그녀는 남성들이 읽던 경서를 그들보다 더 열심히 읽었고, 그들이 만든 예절을 그들보다 더 잘 지켰고, 시댁의 조상과 후손을 이어주는 제사에 누구보다도 열심이었고, 심지어 시댁 조상들의 공적을 길게 찬미하는 글을 썼다. 그리하여 그녀의 문집은 가문에 의해 간행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문집에서 그녀는 시댁 인물들의 공적을 전형적으로 나열한다. 그러다가 문득, 11대조 시할아버지 항목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겨 놓았다. “시할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 술에 취하여 꽃나무 아래 잠드셨다.” (被酒, 睡於花樹下) 이것이 시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의 전부다. 아마도 시할아버지는 다른 친척들과는 달리 과거 공부를 해서 관료가 되거나, 경서를 읽어 학문적 업적을 쌓거나, 지역의 도덕군자가 되는 대신, 술에 거나하게 취하여 꽃나무 아래 잠드는 종류의 성취를 한 것 같다. 강씨 부인이 남겨 놓은 한 문장에 기대어, 당대의 지배적 경로로부터 일탈한 조선 시대 반영웅(anti-hero)을 그려본다. 시대와 불화를 일삼았던 그는, 왕조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술에 취해, 흰색 대형견처럼 꽃그늘을 찾아 눕는다. 그리고 감기는 눈을 하늘을 향해 치켜뜨면서 톨스토이 풍으로 중얼거리는 거다. “나는 이 조선의 사회와 문화가 지겹다. 남의 집 조상 제사를 위해 허리가 휘도록 일하는 저 여인들의 고통을 동정한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혁명이든 무엇이든 하고 싶다, 단 설거지와 집 안 청소만 빼고.”

꽃나무 아래 취해 누운 중세 지식인의 동공에 비친 하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현대의 어느 도시에는, 지쳐 누운 사람들이 쳐다볼 수 있도록 철골로 시(詩)를 적어 허공에 설치하는 조각 프로젝트가 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철골 조각 아래 누워 하늘을 배경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를 읽는다. 브레히트는 자신에게 제사를 지내주면 복을 내려주겠노라고 약속하는 대신 ‘후손들에게’라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힘은 너무나 약했고, 목표는 아득히 멀었다. 목표에 내가 도달할 수는 없었지, 목표가 시야에 들어왔다고 해도.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게 되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다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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