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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름으로 산 여동생… 탈레반 인권 탄압 알리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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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름으로 산 여동생… 탈레반 인권 탄압 알리고파”

입력
2017.10.18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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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아프가니스탄 여성 감독 로야 사다트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뒤 박탈된 여성 인권 회복을 위해 영화를 만들고, 독서 동호회를 꾸렸다.
그림 1 아프가니스탄 여성 감독 로야 사다트는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뒤 박탈된 여성 인권 회복을 위해 영화를 만들고, 독서 동호회를 꾸렸다.

소녀는 집 밖으로 홀로 나갈 수 없었다. 머리부터 발목까지 가리는 이슬람 전통 의상 부르카를 입더라도 남자와 동행해야 했다. 소녀의 가족은 부모를 포함해 10명. 남자는 그의 아버지밖에 없어 9명의 여자가 외출하려면 남자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다. 결국 소녀의 여동생 중 한 명은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바꿨다. 머리도 짧게 잘랐다. 남자 행세를 하기 위해서다. 외출 편의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여성은 가축 취급을 받았고, 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던 1996~2001년, 로야 사다트(34)는 야만적인 성차별을 겪어야 했다.

사다트는 탈레반 정권 시절 자행된 “믿을 수 없는 일”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서였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탈레반 정권 몰락 이후인 2003년 단편 영화 ‘스리 닷츠’를 만들었다. 약물 운반을 강요 당하는 여성의 얘기로 소외된 사람의 연약한 삶을 보듬는 내용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보기 드문 여성 감독인 사다트는 이 영화와 ‘타아르와 실’ 등으로 50개가 넘는 해외 영화제에 초청돼 주목받았다. 그는 젊은 세대가 어떻게 하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란 고민을 담은 드라마 ‘사일런트 헤븐’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사다트는 신작이자 자신의 첫 장편영화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돼 최근 부산을 찾았다.

영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사다트는 신작에서도 여성의 인권을 화두로 사회 비판의 날을 세운다. 남편 살해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여성을 내세워 아프가니스탄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여성들이 처한 고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은 대통령에게 특별 사면을 간청하는 편지를 쓴다. 시민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는 것은 부당함을 호소할 언로가 막히고 억울함을 구제해 줄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사다트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란 제목은 세계에 띄운 메시지이자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사다트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권력을 다시 잡게 될까 두렵다. 탈레반이 물러난 뒤 상황은 변했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문맹률은 여전히 높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 영역이 많지 않다. 그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2013년 자국에서 처음으로 여성영화제를 꾸렸고, 여성의 지식 함양을 위한 독서 동호회도 만들었다.

사다트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2006년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출신이다. 아시아영화아카데미는 아시아의 영화학도가 부산영화제 기간에 유명 영화인에게 영화를 배우는 단기 교육프로그램이다. 사다트는 “부산은 내 영화의 고향”이라며 “기술적으로도 영화에 대해 많이 배웠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사다트는 고국으로 돌아가 새 영화를 준비한다. 여동생과 영화사를 차린 사다트는 각기 주제가 다른 시나리오 두 개를 써 뒀다. 그는 “인권 문제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의 전쟁에 가려져 왜곡된 아프가니스탄의 진짜 삶을 영화로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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