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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조영남에서 노동 한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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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조영남에서 노동 한류로

입력
2016.05.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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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화백이 사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다. 다른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판매한 혐의다. 그러나 조씨의 해명에 따르면 그림을 그려준 화가는 자신의 조수이며, 자신은 그에게 원안과 아이디어를 주었고 그는 지시받은 대로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조씨의 해명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을 대작(代作)이라 할 수는 없다. 직접 그렸느냐의 여부는 예술작품에서 한 톨만큼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인즉 작품의 예술성을 말할 때 예술가의 손길이 주된 포인트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런 경우는 예술가의 노동행위 자체가 콘셉트인 경우다. 오히려 작품을 도급 제작했다는 사실을 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예술가도 많다. 비단 현대예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가 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중요한 대작(大作)들은 대부분 조수나 하도급 업자들이 만들었다. 조씨의 경우 화투 연작이 그의 확고한 스타일로 인정받고 있고, 그 스타일 자체가 그의 창작이므로 개별 작품을 남에게 맡겼다 한들 문제가 아니다.

예술가란 본디 작품을 제작하는 기능공이나 장인이 아닌 감독에 가깝다. 건축가에 비유해도 좋다. 건축가는 설계만 할 뿐이지만 완성된 건축물은 그의 작품이다. 나는 노동자가 시공한 건축물이 건축가의 이름으로 팔린다는 이유로 검찰이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이 비유는 모든 예술가가 작품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나처럼 손수 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프 쿤스처럼 제작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로댕처럼 거푸집만 혼자 만들고 주물은 남에게 맡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사진 현상과 액자 제작은 남에게 맡기는 것 같지만 일단 묻어두겠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관점은 진중권 교수의 진단이다. 조영남 화백이 콘셉트를 제공했다면 (대작 논란의) 문제는 없지만, 대신 공임이 10만원인 부분을 문제 삼자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제프 쿤스의 경우 최고의 인력만을 고용한다면서 기술자들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었다. 로댕은 거푸집을 만든 비용만 자신이 받고 그걸 구입한 사람이 청동상을 수십 점씩 찍어 팔게끔 내버려두었다. 조영남 정도의 명성을 가진 중견 화가가 조수에게 고작 10만원씩 주었다면 공평하지 않은 일이다. 다만 당사자 간에 합의된 계약을 왜 제3자가 문제 삼느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흥이 많은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제 손으로 일하여 얻은 이익을 남이 가져가는 꼴을 보지 못하였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부터 이익균점조항을 헌법에 넣었을 정도다. 이익균점이란 노동자가 매달 받는 임금과는 별도로 회사의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받는 권리다. 투자자가 자금을 출자하듯이 노동자는 노동력을 출자하므로 보장받는 것이다. 이 조항은 안타깝게도 5ㆍ16 정변으로 인해 사라졌지만, 젓가락질에 능숙한 우리 민족의 DNA에 지금도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고용자’인 조씨가 ‘노동자’인 조수를 저임금으로 굴리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한 인터넷 신문은 조영남 화백에게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재경 지역 판사의 발언을 보도했다. 수십만 원에 작품을 위탁하여 수백만 원을 받고 팔았다면 금전적 이득을 노린 사기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에 감응하는 걸 보면 역시 나도 김치를 잘 먹는 한국인이다. 단, 조씨에게 죄가 있다면 하청업체에 위탁한 제품에 자사 로고를 박아놓고 비싸게 파는 대기업에도 같은 죄가 적용되어야 한다. 노동자에게 헐값을 쥐여주고 만든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파는 모든 회사도 같은 죄가 적용되어야 한다. 도처에 널린 위탁생산과 사기적 판매의 관행을 없애려면 이익균점제의 부활이 필요하다. 그게 선행된다면 나는 검찰 수사에 초강력 찬성할 것이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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