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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돋보기] 무릎ㆍ팔에 철심 박고 부활했던 린지 본 뒤엔…

입력
2018.02.23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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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부ㆍ스키협회 든든한 지원

의사ㆍ트레이너 등 스태프 6명 동행

대표팀 멘탈 트레이너도 재활 도와

21일 강원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활강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린지 본(미국)이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강원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활강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린지 본(미국)이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기, 조금만 천천히 달릴 순 없을까요?”

햇볕이 쨍쨍 내려 쬐던 2016년 여름, 아직 눈도 덮이지 않은 정선 알파인경기장 코스를 둘러보겠다며 린지 본(34ㆍ미국)이 한국에 왔을 때 내가 그의 운전기사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과 2017년 월드컵 대회를 대비해 코스를 익히기 싶다고 찾아온 본을 위해 우리 스키협회에서는 영어도 되고 운전도 되고 코스도 잘 알고 있는 나를 보냈다.

정선 뒷길로 코스 정상까지 올라가는 덴 차로 1시간은 족히 더 걸린다. 매번 지나 다녀 길을 잘 알고 있던 탓에 차를 조금 빠르게 몰았더니 무서웠나 보다. 처음엔 쭈뼛쭈뼛하며 망설이더니 나에게 “살살 좀 가면 안될까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며칠 뒤 내 제자들이 본에게 사인을 받으러 갔는데 그가 나를 두고 “크레이지 드라이버”라고 말해 우리 둘 다 빵 터졌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훈련차 미국 커퍼마운틴을 방문해 본을 다시 만났을 때 나를 기억하고는 “그 때 그 드라이버”라고 웃는 모습을 보니 슈퍼스타라기 보다는 털털한 이웃 동생 같았다.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성격도 굉장히 좋은 선수다.

린지 본은 말이 필요 없는 슈퍼스타다. 전 세계에서 시상대에 가장 많이 올라간 선수다. 타고난 체격, 근력과 몸의 비율 까지 모든 게 완벽하지만 그를 더욱 대단하게 만드는 건 부상을 극복한 이력이다. 경기 도중 숱한 사고를 당한 그의 양쪽 무릎과 팔에는 철심이 박혀 있다.

스키를 타다가 부상을 한 번 겪고 나면 트라우마가 오래 간다. 고등학생 때 시합을 뛰다가 스키 두 짝이 모두 부러질 정도로 넘어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어서 일주일 뒤에 다시 스키장에 다시 올라갔는데, 출발선에 서니 너무 무서워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던 순간이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강하게 남아있다. 본이 당한 사고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일 텐데, 그가 이렇게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업적은 린지 본 혼자서 이뤄낸 것은 아니다. 미국 스키팀을 20년 지도한 랜디 펠키 코치에게 들어보니 본의 위대한 업적 뒤에는 든든한 스태프들이 있었다. 의사, 트레이너, 피지컬 트레이너를 포함한 코칭스태프 6명이 본과 함께 다닌다. 여기에 미국대표팀을 전담하고 있는 멘탈 트레이너까지, 선수가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미국 정부와 스키협회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인 동시에 린지 본의 전문가다. 그가 쓰러질 때 마다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이런 든든한 지원군 덕분이었다.

올림픽 무대에 복귀해 고별전을 치른 본의 모습을 보니 생각이 자연스럽게 우리 대표팀으로 옮겨간다. 최근 지원이 몰라보게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스키협회와 대한체육회의 지원은 역대 최고였다. 이러한 지원이 계속 이어진다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성적은 곧 지원이다. 그 동안 비인기 종목이었던 스켈레톤에서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딴 뒤 이용 총 감독은 “다른 비인기 종목도 체계적인 지원이 있으면 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격하게 공감한다. 튼튼한 지원만 있으면 2022 베이징올림픽에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제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후보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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