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을 구조하는데)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23일 오후 광주지법 201호 법정. 이준석(68) 선장 등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한 5차 공판에서 생존자 증인으로 나선 김동수(50)씨는 증인선서를 하기 전 갑자기 방청석을 향해 돌아서서 유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했다. 김씨의 행동에 유족들은 어리둥절했다.
잠시 후 “내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학생들을) 구했어야 했는데…. 내가 애들에게 (선실에서) 나오라고만 했어도 그런 참사는 없었을 텐데, 죽을 죄를 졌습니다”라는 김씨의 자책 같은 증언이 이어지자 유족들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김씨가 세월호 침몰 당시 왼쪽으로 완전히 기운 배 4층 갑판에서 탈출을 미룬 채 위태롭게 한 손으로 소방호스를 끌고 가 선실에 갇힌 학생들과 승객들을 구조했던 ‘파란 바지의 구조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유족들은 김씨의 증언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쫑긋 세웠다. 김씨가 ‘살아 남은 자’로서 겪고 있는 고통을 털어 놓자 방청석 곳곳에선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당시 피해학생과 같은 또래의 제 딸이 생각나 아무 생각 없이 구조했다”던 김씨는 “제 자신이 망가졌다. 이제는 길도 동(쪽)서(쪽)가 헷갈린다. 버스를 타면 그때 일이 생각이 나 승객들에게 창문으로 뛰어내리라고 소리를 친다. 사우나에 가면 배에 갇혀 있던 학생들 생각에 따뜻한 물로 샤워도 못하고 탕 속에도 못 들어간다”고 호소했다.
50분간의 증인신문이 끝나자 재판장인 임정엽 부장판사는 “증인의 구조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보면서 재판부도 감탄했다”며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정신적 고통에서 빨리 회복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위로했다.
그러나 김씨는 여전히 자신을 죄인이라고 자책했다. 이날 증언을 마치고 다소 지친 표정으로 법정을 나온 김씨는 세월호 선원들에게 해줄 말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도 죄인인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 나도 (결국) 도망 나왔는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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