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4일에도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과 전국의 220여 개 분향소에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다소 쌀쌀해진 날씨에도 시민들은 가던 길을 멈춘 채 헌화하거나 묵념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주한 일본대사 “큰 위인을 잃었다” 애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및 김영삼 전 대통령과 4·19 혁명을 주도했던 인사들, 문민의 정부 시절 장관을 지냈던 인사들이 다수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YS와 신민당 생활을 함께 했고 민주당 총재를 지낸 이기택 전 민주당 의원은 “4ㆍ19 세대가 김영삼 대통령을 못 잊는다. 4ㆍ19가 혁명이냐 아니냐를 두고 계속 통일이 안되고 있었는데, 당시 정부의 결정으로 ‘혁명’이 됐다”고 말했다. 이철 전 의원은 “70~80년대 양김(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그 때 저희들은 좀 더 그 역할을 해주시길 기대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과욕이었구나 (생각했다). 다시는 만나지도, 모시지도 못할 큰 인물”이라고 애도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박근혜정부)도 이날 오후 늦게 빈소를 찾아 두 시간 가량 머물렀다. 그는 “고향 대선배님인데 당연히 조문해야 한다”며 “김 전 대통령은 산업화로 이룬 토양 위에 민주화라는 역사적 과업을 이룩한 역사적인 국가원수”라고 밝혔다. 김 전 비서실장은 19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우리가 남이가’라는 발언으로 김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불법선거운동을 모의한 초원 복집 사건의 주역이기도 하다.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도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는조문을 마치고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과 환담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큰 위인을 잃었다”고 애도를 표시했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이라는 큰 위인을 잃고 상실감을 느끼고 있지만, 남은 사람으로서 한ㆍ일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여러분과 협력해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명 ‘용팔이 사건’ 주범 김용남씨도 조문… 재계 발길도 이어져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일명 ‘용팔이 사건’)의 주범 김용남(64)씨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김씨가 목사가 됐다고 한다”며 “기도와 묵념을 오래했다”고 전했다. 용팔이 사건은 1987년 4월 김 전 대통령이 창당을 추진하던 통일민주당 지구당 20여곳에 폭력배가 난입해 난동을 부린 사건을 일컫는다. 김씨는 지난 1988년 검거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또 이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이택돈 전 의원과 장세동 전 안전기획부 부장은 각각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재계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이날 오전 이채욱 CJ 부회장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손 회장은 고인에 대해 “우리나라 민주화와 금융실명제 등 선진 제도를 도입한 훌륭한 지도자”라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아들 정의선 부회장과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헌화했다. 이외에도 최태원 SK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구자열 LS 그룹 회장 등이 조문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전국의 분향소에도 애도 행렬이 이어졌다. 특히 서울시청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김덕룡 전 의원과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등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인사들이 함께 조문객을 맞아 눈길을 끌었다.
YS의 고향인 거제시 대계마을 생가 옆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고인이 졸업한 장목초교 재학생 67명 전원이 찾아 대선배를 추모했다. 검은색 계통의 옷으로 통일한 이들은 교사 6명의 인솔로 버스 2대를 나눠 타고 분향소를 찾았다. 5학년 천모양은 “장목초 졸업생 가운데 가장 유명한 김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슬펐다”며 “선배님의 넋을 기리고자 찾았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buttonpr@hankookilbo.com
정승임기자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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