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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세종 석ㆍ박사들, 국책硏 비정규직 연구원 대량해고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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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세종 석ㆍ박사들, 국책硏 비정규직 연구원 대량해고 위기

입력
2018.05.10 04:4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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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자 300명 중 35명 계약

정규직 전환 비율 극히 저조

“연구과제 줄어들면 재정 압박

정부도 인건비 부담 짊어져야”

주요 국책연구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계획. 박구원기자
주요 국책연구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계획. 박구원기자

국책연구기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최근 정규직 전환대상 비정규직 83명 가운데 25명만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해당 기관에서 정부가 발주한 각종 연구 프로젝트를 3년 이상 맡아온 나머지 석사 연구원들 상당수는 전환 절차의 마지막 ‘문턱’인 면접을 넘지 못한 채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전 연구원 A씨는 “전환에 따른 비용 등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주관적 면접을 통해 비정규직 연구원을 고의적으로 쳐낸 것으로 보인다”며 “교수, 박사, 기관이 촘촘하게 얽힌 연구계의 특성 상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과기연 관계자는 “추가로 2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절차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일부 국책연구기관에선 비정규직 연구원이 대량 해고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인건비 등 ‘실탄’ 지원 없이 정규직 전환 목표 달성만 독촉하자 일부 기관들이 재원 부담 등을 이유로 극소수 비정규직 연구원만 전환하고 나머지는 모두 쫓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9일 한국일보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국책연구기관 26곳을 대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곳(73%)이 이미 전환을 마무리했거나 전환 계획을 수립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연중 9개월 이상, 향후 2년 이상 지속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 기관들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매우 저조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정규직 전환대상 비정규직 300여명 중 35명,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130여명 중 38명만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전환대상 260명 중 30~50명만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방침을 검토 중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은 156명 중 90명만 전환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인사담당자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무에는 유사ㆍ동일 직무의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없고, 정규직 전환으로 인건비 부담도 커져 ‘전환 탈락자’ 상당수는 계약해지 혹은 계약연장 불가 통보를 받을 수 밖에 없다”며 “비정규직 연구원 대량해고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 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해고될 것으로 예상되는 비정규직은 주로 단기계약직 연구원이거나 위촉연구원이다. 이들은 정부나 외부 단체 등이 발주한 1~3년 단위의 단기 연구 프로젝트를 따와(수탁) 연구를 수행한다. 대부분 석ㆍ박사급 인력이다. 위촉연구원 B씨는 “기초연구과제는 프로젝트 이름만 바뀔 뿐이지, 수년간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적잖다”고 말했다.

이들 기관들이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인 것은 무엇보다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인사담당자 C씨는 “정규직 전환 재원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한 푼도 지원해줄 수 없으니 알아서 재원 방안을 강구하라’는 것”이라며 “위촉연구원 수십, 수백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후 이들이 따오는 수탁과제 규모가 줄어들면 재정적 압박이 엄청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극소수 전환, 다수 해고’ 외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담당자 D씨는 “2016년 500억원이었던 수탁사업 규모가 지난해 400억원까지 떨어졌고, 올해는 320억원까지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며 “수탁사업 변동폭이 큰데 정부는 이에 대한 고려 없이 모든 국책연구기관에 획일적인 가이드라인을 들이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복리후생비 등 각종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정부가 국책연구기관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다면 그 비용도 정부가 마련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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