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단톡방 성희롱 사건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서 논쟁 불거져
“군대 등 남성들 역차별 받는데…”
여성우대정책만 지속 확대 주장
여성전용칸 반대 투쟁 등 움직임
“양성평등 본질 간과한 발상” 지적
“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남성 인권을 유린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입장을 규탄한다.”
지난 11일 서울대 인문대 남학생들이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에서 동기 여학생들을 성희롱한 사실이 밝혀진 이후 서울대 학생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는 때 아닌 논쟁이 불거졌다. ‘왜 여성 인권만 중시하느냐’는 남학생들의 항변 때문이었다. 이들은 단톡방 음담패설이 도덕적 지탄은 받을지언정 학내 기구가 사적 대화를 공개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카톡 내용을 공개한) 소수자인권위는 남학생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그만 둬라. 피해자가 있다면 당사자들끼리 협의로 해결하게 하고 위법성이 있다면 수사기관에 신고하면 된다”는 한 글쓴이의 주장에 많은 댓글과 공감이 쏟아지기도 했다.
젊은 남성들 사이에 ‘남권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남역 20대 여성 피살사건과 대학가의 잇단 단톡방 성추문 등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여성 혐오’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지만, 반대 급부로 ‘그렇다고 남성이 잘못한 게 무엇이냐’는 그릇된 여론이 싹튼 것이다. 군대 등 남성들이 감내하는 사회적 손실을 보상 받아야 한다는 기존 남성 우월론자의 맥을 잇는 주장에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 단톡방 사건 직후 스누라이프에는 ‘단톡방에서 여성을 성적대상화한 남학생들의 행태는 성윤리 의식 부족 때문’이라며 비판하는 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단톡방 내 대화 내용을 공개한 것이 과연 타당하느냐는 위법성 여부로 논란이 전개됐다. 지난 5월 강남역 살인 사건 때에도 여성혐오 비판 여론에 반발해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모는 것이 불쾌하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주장들은 최근 불붙고 있는 젊은 남성들의 권리찾기 운동과 맥이 닿아 있다. 김동근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 대표는 15일 “여성들의 사회 참여와 권한이 과거보다 급격히 상승하면서 오히려 20~30대 남성들은 군대와 결혼비용 마련 등의 문제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게 군대에서 2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국가에 바친 남성들에 대한 배려는 턱없이 부족한 반면, 여성우대정책만 지속적으로 확대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여성 비율이 급격히 줄어드는 성비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여성할당제’나 여성 대상 성범죄를 예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전용 주차장, 지하철 여성배려칸 등을 대표적 역차별 사례로 꼽는다.
남권 운동은 여론결집 차원을 넘어 온ㆍ오프라인의 세력화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최근 한 남성 온라인 커뮤니티는 ‘안티 페미니즘’을 외치며 “부산지하철 여성전용칸 결사 반대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남성 인권을 옹호하는 시민단체들도 거리로 나서고 있다. 양성평등연대는 지난 5월 서울시청 등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극단적 페미니즘에 의한 여성 특혜정책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특정 사건으로 촉발된 ‘젠더 논쟁’을 단순한 세 대결로 몰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여권 증가→남권 감소’의 이분법적 접근은 양성평등정책의 본질을 간과한 발상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페미니즘은 단지 여성의 권리 우위가 목적이 아니라 성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고 생물학적 차이를 이유로 나타나는 사회적 역할분담이 양성 모두에 긍정적이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며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유ㆍ불리를 따지기 보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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