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인공지능 로봇 ‘니코’ 앞에 거울을 놓고 니코의 팔을 움직인 다음 그 움직임이 앞에 있는 다른 물체의 움직임인지, 자신의 움직임인지 판단하게 했다. 놀랍게도 니코는 자기 팔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인공지능 로봇이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순간이다. 이러한 ‘거울테스트’는 동물 중에선 일부 영장류와 코끼리, 돌고래만 통과했고, 사람은 평균 생후 약 18개월이 지나야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지난해 개봉된 영화 ‘터미네이터:제네시스’에는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하며 인간을 공격하는 인공지능 로봇 ‘T-800’이 등장했다.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인류의 두려움을 영화는 꿰뚫었다. 그러나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다.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가져야 한다. 과학자들은 자의식을 갖기 전까지 인공지능은 인류의 도구일 뿐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알파고가 준 충격은 이러한 고정 관념까지 깨뜨리고 있다.
인공지능(AI) 혁명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인간의 수준을 뛰어 넘은 것으로 평가되는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의 충격은 AI 혁명의 신호탄일 뿐이다.
무엇보다 AI의 발전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11일자엔 홍정민 미국 버클리국립연구소 선임연구원과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제프 보커 교수팀이 고효율의 ‘자석(마그넷) 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마그넷 컴퓨터는 컴퓨터의 두뇌에 해당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중앙처리장치)를 현재의 실리콘이 아닌 자석으로 대체한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홍 연구원은 “알파고가 소프트웨어의 혁신이라면 마그넷 컴퓨터는 하드웨어의 혁신”이라고 설명했다.
알파고는 1,200여대의 중앙처리장치가 연결된 슈퍼컴퓨터로 빅데이터 연산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다. 인공지능 1세대인 IBM의 ‘딥 블루’나 2세대 ‘왓슨’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알파고의 빅데이터 처리 능력은 현존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하드웨어 연구자들의 눈에 알파고는 여전히 비효율 덩어리다.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의 단초가 열린 셈이다. 홍 연구원은 “마그넷 컴퓨터는 고효율의 연산이 가능, 소프트웨어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차세대 하드웨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과학자들도 AI의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지난 9일 ‘나노신경망 모사기술 개발사업단’을 출범시켰다. 현재 세계 전력 소모량의 약 10%는 컴퓨터의 서버(중앙처리장치, 메모리, 저장장치 등을 모아놓은 설비)를 구동하고 유지하는데 쓰인다. 인공지능이 곳곳에서 더 활성화한다면 전력 소모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게 자명하다. “수년 안에 인공지능이 새로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받을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마저 나온다. 사업단을 이끌 김대식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이세돌 9단의 뇌는 하루 20와트 전력 정도의 에너지로 작동하지만 알파고는 이보다 100만배 이상의 전력을 쓴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의 어마어마한 전력 소모를 줄이는 방법은 나노신경망 칩이다. 김 교수는 “3년 안에 두뇌의 효율을 모방해 최저 전력으로 구동하는 회로를 설계하고, 이를 휴대전화에 넣을 수 있는 칩으로 구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술들이 현실화할 경우 인공지능은 전성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IBM의 ‘왓슨’이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는 능력을 갖춰 1세대 인공지능 ‘딥 블루’가 못한 퀴즈쇼 우승을 해내고, 알파고가 자기학습 기능을 통해 왓슨이 못한 바둑에 도전했듯 알파고 이후 인간과 대결할 4세대 인공지능 출현도 멀지 않았다.
‘니코’가 등장했을 때 일부 과학자는 ‘니코’의 반응을 진정한 자의식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로봇 팔과 다른 물체의 데이터를 비교하는 계산을 반복해 얻어낸 기계적 결과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체감응솔루션연구단장은 “학계가 인정하는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이나 로봇은 개발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아무리 똑똑한 인공지능이라도 임무만 수행해낼 뿐 그 이상의 판단이나 행동을 스스로 해내진 못하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바둑에서 흐름을 예측하거나 배우지 않았던 수를 놓긴 했지만 그 역시 개발자의 철저한 계획 아래 진행된 학습의 결과란 지적이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T-800은 내재된 알고리즘이 복잡한 네트워크 안에서 뭔지 모를 상호작용을 거쳐 갑작스럽게 자의식을 갖게 됐다. 과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현상이다. 특정 임무를 인간보다 뛰어나게 해내는 인공지능 여러 개를 연결했을 때 새로운 정보를 넣어주지 않아도 기계의 지능이 확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바뀐 인공지능은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일을 벌일지 모른다.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적이 아닌 동반자로 이어가야 할 과제가 인류 앞에 놓였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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