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떨어지는 웹툰이라고?
대중눈치만 보는 그들이 진짜 작가"
웹툰은 과도기 정답은 없다
드라마로 얻은 인기, 후배들을 위해
전국에 미생 열풍을 불러왔던 tvN 드라마 ‘미생’은 끝났지만 여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비정규직 계약 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겠다는 일명 ‘장그래법’에 대한민국이 분노한다. 현실이 고달픈 사람들은 “우리 모두가 미생”이라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이 같은 미생의 여파는 원작 웹툰을 만든 윤태호(46) 작가를 만화계 밖으로 불러냈다.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만화가 중 한 사람이지만, 그도 최근에야 수십 년 묵은 빚을 털고 여유를 찾게 됐다. 그만큼 미생은 윤 작가에게 각별한 작품이다. 그는 “웹툰 ‘이끼’가 대중에 잊혀졌던 내 이름을 알렸다면 ‘미생’은 지워지지 않도록 각인시켜 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작가는 이런 인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에 없던 관심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뿐이다. 쏟아지는 관심에 건강까지 악화돼 최근에는 연재 중인 작품도 잠시 중단했다. 밀려드는 강연과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는 것 역시 큰 숙제다. 그런 윤 작가를 어렵게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_미생의 성공 이후 가장 크게 변한 것이 무엇인가.
“피곤해졌다. 책상에서 작업해야 하는 사람인데 여기저기 부르는 곳이 많다. 드라마 만든 사람들만 응원하면 될 텐데 원작자까지 많이 찾는다. 물론 감사한 상황이지만, 노출이 많이 돼 작업 할 때 방해도 된다.”
_그래서 다음카카오에 연재 중인 ‘파인’을 두 달 째 쉬고 있다. 언제쯤 다시 시작하나.
“주 3회 마감을 거의 2년간 해 왔다. 어깨에서 시작된 통증이 이제 목까지 올라 왔다. 점점 심해진다. 게다가 외부에서 많이 찾아 산만하다. 이런 상태에서 작업을 하면 작품이 이상해진다. 이미 영화 판권 계약도 된 작품이라 망치면 곤란하다. 욕을 먹더라도 조금 쉬기로 했다. 덩달아 ‘미생’ 시즌2도 계속 늦어지고 있어서 출판사와 다음카카오가 굉장히 곤란해 하고 있다.”
_드라마 성공 이후 완전하게 살지 않은 돌을 뜻하는 바둑 용어 ‘미생’이 언제 일자리를 잃을 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직장인들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주인공 장그래도 비정규직 사원을 통칭하는 이름이 됐다. 그만큼 작품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부에서 미생이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면 덜컥 겁이 난다. 이런 말들이 더 이상 내 작품 속에 한정된 것이 아니란 생각 때문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에 관여하려 들면 거꾸로 휘둘릴 수 있다. 그래서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작품과 외부 상황 사이에 경계를 분명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_만화가 드라마나 영화와 가장 다른 부분은.
“제일 큰 차이는 작업 방식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감독과 프로듀서(PD), 작가 등이 함께 합의를 통해 만든다. 터를 닦는 과정부터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것이 부럽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포함되는 만큼 작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여러 사람의 부담이 커진다. 반면 만화는 작가 혼자서 모든 세상을 만든다. 그만큼 혼자 져야 하는 책임이 크지만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 나에게는 만화가 더 적합한 것 같다.”
_문하생 4명과 함께 작업을 한다.
“문하생들은 내가 작품을 쉬는 동안에도 화실에 나와 작품 속 배경이나 견본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월급을 주고, 4대 보험도 제공한다. 월급을 주는 이유는 데뷔 전까지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생활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화실을 그만둘 경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도 있다.”
_문하생들에게 4대 보험을 제공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만화계에서 문하생들이 그만큼 대우를 받지 못했다. 나도 오랜 시간 그런 문하생 시절을 보냈다. 작가들은 문하생들을 마치 나의 영혼까지 이어받을 자식처럼 다루면서 그들의 생계를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잘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여전히 부족하다.”
_아예 회사를 만들어 문하생들을 더 많이 뽑으면 작업이 수월하지 않을까.
“회사를 만들면 더 많은 문하생들을 뽑을 수 있겠지만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별개 문제다. 사람이 많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화의 완성도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작품의 매력에 달렸다. 작품의 매력은 작가의 창조성이 중요한 만큼 오히려 관여하는 사람이 적을 수록 유리하다.”
_과거 출판만화 시절 만화가가 되려면 도제시스템을 거쳐야 했는데, 이제는 누구나 웹툰을 그려서 인터넷에 올리면 네티즌들이 평가하는 포털의 오디션 형식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예전보다 쉽게 만화가가 될 수 있지만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도 작가가 돼 문제라는 지적이다.
“출판만화와 달리 웹툰은 편집장이 없다. 그래서 작가가 편집장의 시각까지 가져야 한다. 그만큼 웹툰 작가들은 독자가 원하는 만화가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요즘 웹툰 작가들은 과거 도제시스템 시절처럼 선배 작가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오직 대중의 눈치만 살핀다. 대중을 우선 고려하는 게 진짜 작가다. 그들에게 따로 그림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없어서 기술적으로 덜 숙련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요즘 웹툰 작가들의 기교가 부족하다고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_그렇다면 만화가로 성장하기 위해 오디션 방식이 더 적절하다고 보는가.
“사람마다 다르다. 반드시 스승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도제식보다 오디션 방식이 더 낫다. 도제시스템은 스승이 문하생에게 생각과 방식을 주입한다. 도제 시스템에서는 문하생들이 너무 바빠서 스승 이외 다른 작가들의 의견을 고루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승이 완벽한 존재도 아니다. 반면 오디션 방식은 독자들의 요구가 작품 평가에 바로 반영된다. 그만큼 오디션 방식을 거친 작가들은 독자의 요구를 더 잘 파악한다. 대중작가라는 측면에서 한 발 더 앞서 시작하는 셈이다.”
_웹툰 시대가 되면서 말초적 작품이 인기를 끌어 작품성이 점점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출판만화 때도 말초적 작품은 인기가 많았다. 그건 대중문화의 속성일 뿐 웹툰의 문제는 아니다. 보통 과거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지금보다 옛날이 더 나아 보일 뿐이다. 대중문화가 그런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대중문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잊으면 안된다.”
_무료 제공되는 웹툰 때문에 ‘콘텐츠가 무료라는 인식을 키운다’는 비판도 거세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돈을 주고받지 않는다고 무료라고 말할 수 있나. 웹툰은 가치를 주고 받는다. 독자가 굳이 찾아와 만화를 보는 행위로 작품의 가치가 형성되고 시간 등의 투자비용이 발생한다. 과거 만화잡지를 사기 위해 서점을 찾아가 돈을 내고 만화책을 사던 행위와 모양만 달라졌을 뿐 개념은 같다.”
_연재가 끝난 작품은 유료화하고 있다. 과금 기준은 어떻게 되나.
“웹툰은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어떤 방법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작가 개개인이 무엇이 좋은지를 고민할 뿐이다. 나는 연재 중인 작품은 무료로 제공하고, 완결된 작품은 유료로 전환한다. 비용은 다른 작가보다 비싸다. 기준은 독자가 인터넷에서 대여 개념으로 보는 게 나은지, 단행본을 사는 게 나은지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이다. 미생이 200만부 이상 팔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같다.”
_웹툰보다 여전히 단행본에 대한 애착이 더 크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둘 다 중요하지만 개념이 다르다. 웹툰이 연재 그 자체라면 단행본은 최종 결과물이다. 결과물의 형태가 지금은 책이지만 앞으로는 전자책이 될 것이다. 특히 전자책이 활성화하면 배경음악을 삽입하는 등 멀티미디어 요소를 접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_작품 활동 외에 만화 리뷰사이트 ‘에이코믹스’도 운영한다. 만들게 된 계기는.
“신인 작가들이 작품을 알릴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포털 5, 6군데에 올라오는 웹툰이 하루 200여편이다. 독자들이 어떤 작품을 봐야 하는지 가이드가 없다. 따라서 아직 유명하지 않지만 독자가 봤으면 좋을 만한 작품을 알리기 위해 사이트를 만들었고, 매일 10편씩 소개한다. 조금이나마 더 유명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_이제 우리 만화계의 대표 작가로 부상한 만큼 책임감이 크겠다.
“앞으로 유명세 덕에 들어오는 정부 지원 같은 것은 받지 않으려 한다. 고생하는 후배들이 받게 하고 싶다. 역량이 있다면 개인보다는 만화의 저변을 확장하는 데 쏟고 싶다.”
이서희기자 shlee@hk.co.kr
전혼잎기자 hoihoi@hk.co.kr
인현우기자 inhyw@hk.co.kr
정새미 인턴기자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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