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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의 통뼈, '크루즈' 예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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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의 통뼈, '크루즈' 예찬가

입력
2017.03.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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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저항을 테스트하는 쉐보레 크루즈. GM 제공
공기저항을 테스트하는 쉐보레 크루즈. GM 제공

자동차 분야에는 만고불변의 명제가 있다. 기술적인 측면으로 볼 때 ‘자동차는 무조건 새로 나오는 차가 좋다’는 것. 쉐보레 크루즈는 좋은 차다. 뼈대(섀시)만 본다면 라이벌들의 존재가 무색하게 압도적이다. 운전 조금 하는 이들이라면 급회전 구간에서 금새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거짓말 같다고? 자고로 자동차란 타보고 사야 하는 법. 아직까지 카탈로그나 주위 사람들의 입소문만 듣고 차를 사는 분들이 있으니 ‘오호 통재라!’…

파워트레인으로 평가 항목을 바꾸면 살짝 아쉬워진다. 엔진은 딱히 흠잡을 데가 없지만 카테고리의 기준에서 0.2ℓ 모자라는 배기량만큼 성능이 살짝 아쉽다. 강건한 뼈대를 볼 때 한층 강한 엔진을 써도 무방할 듯하다. 변속기는 여전히 아쉽다. 아마도 내가 듀얼클러치의 기민함에 익숙해진 터라 그럴 것이다. 차라리 북미 시장에 팔고 있는 6단 수동 변속기(M32)를 단 모델을 갖고 싶어진다. 쉐보레여, 상품성 떨어진 아베오 대신 크루즈 수동 원메이크 레이스를 만드시라. 1690만원 크루즈에 마이너스 옵션 수동 기어라면 가격 경쟁력은 한층 훌륭해지니까. 물론 모클팀 경주차를 사려는 지극히 개인적인 단견이다.

쉐보레 크루즈와 섀시를 나눠 쓰는 볼트(Volt)의 한층 복잡한 메커니즘 투시도.
쉐보레 크루즈와 섀시를 나눠 쓰는 볼트(Volt)의 한층 복잡한 메커니즘 투시도.

신형 크루즈는 GM 군단의 전륜구동 플랫폼인 델타2를 바탕으로 만든 차다. 이름만 다를 뿐 뷰익 베라노와 쉐보레 볼트(Volt)의 형제차다. 처음 시승했던 날 트렁크를 들춰보고 의문이 생겨났다. 꼭 배터리 저장을 위해 파 놓은 듯한 길쭉하게 네모난 공간이 차체 바닥에 있었기 때문이다. 크루즈에는 배터리가 들어 있었지만 실제 볼트에는 모터 어시스트를 위한 배터리가 들어 있다. 섀시 하나 잘 만들어 공유하는 전략적 차원의 결과 되시겠다.

하이브리드 모델인 쉐보레 볼트(Volt)의 배터리. 뒤쪽 가로로 배치된 배터리 하우징을 눈여겨보라.
하이브리드 모델인 쉐보레 볼트(Volt)의 배터리. 뒤쪽 가로로 배치된 배터리 하우징을 눈여겨보라.

크루즈의 보디 설계를 체크하기 위해 자료를 찾았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아헨에서 열린 ‘보디 엔지니어링 데이’에 공개됐던 자료가 가장 정확했다. 유럽의 엔지니어들의 작품으로 알려진 신형 플랫폼은 이미 3년 전에 선보였지만 차체는 키우고 무게는 줄이는 최신 공식을 고스란히 따른다. 전체의 74.6%를 고강성 스틸로 구성한 섀시다. 열처리 공법을 거친 인장강도 1180MPa 고강성 스틸을 아낌 없이 썼다. 충격을 받는 부위는 든든히, 후드 같은 부품에는 경량 철판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그런데 투시도를 보니 그게 참 예술적이다. 그래서 쉐보레 레이싱팀을 찾아 화이트 보디를 직접 분석하기로 했다.

쉐보레 크루즈의 화이트 보디. 도어의 사이드 임팩트 빔과 철판의 용접 기술을 보라. 박창완 포토그래퍼.
쉐보레 크루즈의 화이트 보디. 도어의 사이드 임팩트 빔과 철판의 용접 기술을 보라. 박창완 포토그래퍼.

차체를 구성하는 스틸은 연강(MS) 25%, 고장력강(HTS) 35%, 첨단 고강도강(AHSS) 19%, 소부경화강(PHS) 18% 등의 비율인데, 인상적인 것은 적재적소에 배치된 전략이다. 예를 들면 보닛 내부의 강재는 두께를 0.5mm 정도로 줄인 ‘얇은 금속’을 덧댔고, 보닛은 0.6mm의 고장력강으로 내실을 기했다. B필러와 지붕의 결합 부위는 초고장력 강판을 넣었고, 측면 충돌을 대비해 사이드 임팩트 빔과 로커 패널은 아주 튼튼하게 제작했다. 제조사에 따르면 화이트 보디의 중량은 경량 설계로 인해 전혀 늘지 않았고, 총 중량은 전작에 비해 110kg 감량했다고. 이런 게 기술 아니던가!

쉐보레 크루즈의 전측면 섀시 설계를 체크하라. 박창완 포토그래퍼
쉐보레 크루즈의 전측면 섀시 설계를 체크하라. 박창완 포토그래퍼

사진 속 섀시를 보면 프론트 휠 하우스 어퍼 멤버부터가 형상이 달라졌다. 프론드 레일은 종래의 U 형상에서 C 형상으로 바뀌어 강성을 높였고 엔진 크래들 결합 부위가 무척 견고하다. 서브프레임 크레들은 구형과는 달리 더 이상 독립형이 아니다. 앞쪽 서스펜션이 연결되는 마운트는 보강을 위해 판을 겹쳐 용접했다. 자연스레 보디 강성은 그에 비례해서 높아지기 마련이다. 범퍼 안쪽에 들어가는 프론트 벌크 헤드는 든든하다. 충돌이 있어도 그 부위만 갈아 끼울 수 있다. 그러니까 보험료 역시 낮아진다는 얘기. 실제 신형 크루즈는 보험개발원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가 신차를 대상으로 자동차 보험료 산정을 위해 실시하는 RCAR테스트에서 국내 준중형차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17등급을 기록했다.

쉐보레 크루즈
쉐보레 크루즈

프론트 플로어 크로스 멤버, 그러니까 좌우 사이드 실을 잇는 멤버가 든든하다. 섀시는 전반에 걸쳐 압점으로 스폿 용접을 했는데 균일하게 유지된 포인트에서 든든함을 느낀다. 아크 용접, 본딩의 흔적을 찾아내고는 쓱 미소 짓는다. 강성은 확실히 좋을 것이다. 섀시만 본다면 이건 그 흔한 값싼 소형차가 아니다. 훨씬 비싼 자동차에 들어가는 섀시와 흡사하다.

에피소드 하나, 화이트 보디를 새롭게 제작해 경주차를 만드는 쉐보레 레이싱팀을 찾았을 때 이재우 감독이 불쑥 사이드 멤버를 꺼내더니 망치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망치로 완전 때려 갈기는 게 아닌가? 타격음에 귀가 멍해졌지만 부품에는 흠집 하나 남지 않았다.

각진 단면을 위주로 망치로 두들겨봤지만 흠집 하나 나지 않았던 크루즈의 강재.
각진 단면을 위주로 망치로 두들겨봤지만 흠집 하나 나지 않았던 크루즈의 강재.

여기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평범한 운전자는 아닐 거다. 카탈로그 보고 자동차를 사는 사람들은 이런 핵심적인 내용이 관심이 없으니까. 열선이 들어간 스티어링 휠이나 내장재의 고급감, 오디오의 네임 밸류 따위에나 신경을 쓰겠지.

단언하건데 쉐보레 크루즈는 좋은 차다. 아니 섀시만을 놓고 본다면 극단적이다. 1690만원에 연료 효율성과 공력 특성, 차체 강성을 모두 아우르는 이런 차는 내놓기 쉽지 않다. 듀얼클러치 덕분에 가까스로 왕좌를 빼앗기지 않은 7세대 골프 1.4 TSI의 나직한 들숨이 느껴지지 않는가? 뉘르부르크링에서 담금질했다는 이 차를 이 가격에 만날 수 있음을 기뻐하라. 옵션 따위 미련 버리고 1690만원짜리 크루즈 ‘깡통’을 사라고 적극 권하는 바다. 본격적인 시승기는 이후 게재를 약속 드린다.

최민관 기자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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