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적으로 잘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은 제작진이 큰 인기를 기대한 작품은 아니다. 배우 조승우, 배두나의 복귀작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추리심리극을 표방하는 드라마들이 넘쳐 나면서 시청자들이 비슷한 형식에 식상함을 느끼던 때 방송했기 때문이다. 앞서 OCN ‘듀얼’과 tvN ‘써클: 이어진 두 세계’ 등이 복잡한 얼개의 추리 이야기를 선보였다가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다.
첫 방송을 시청률 3%(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로 시작한 ‘비밀의 숲’은 2화부터 시청률 4%대로 상승해 12화에는 5.5%를 달성했다. 한 사건을 둘러싸고 각각의 캐릭터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재미가 붙었다. 시청자들은 캐릭터의 행동, 소품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저마다 자신만의 추리를 펼쳤다. 온라인에는 주인공인 황시목(조승우) 검사까지 시청자의 용의 선상에 오를 정도로 무궁무진한 추리가 쏟아진다. ‘비밀의 숲’은 다른 추리물과 무엇이 달랐을까. 탄탄한 시나리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외에 숨겨진 인기의 비결을 제작진에게 들어봤다.
1. 감정 없고 말수도 적은 주인공, 의외의 매력
황시목은 감정을 느끼지 못해 회사에서도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는 외톨이 검사다. 그는 타인과 교감하는 정의로운 형사 한여진(배두나)와 검찰 스폰서 살인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무표정을 고수한다. 공감 능력은 없고 이성적인 판단만 남아있는 황시목은 차가우면서도 불꽃 같다. 수사를 방해하는 외압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는 모습은 오히려 통쾌함을 선사했다. ‘비밀의 숲’의 한 관계자는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감정을 잃어버린 주인공 캐릭터가 시청자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것 같다”며 “차분하게 추리를 이어가는 모습에 남성미를 느낀 여성 팬도 많다”고 말했다.
2. 반전을 극대화한 엔딩신
제작진이 특히 신경 쓴 부분은 엔딩신. 영화 같은 영상미를 구현하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반전을 담아 시청자의 눈길을 잡았다. ‘비밀의 숲’을 제작한 스튜디오 드래곤의 소재현 PD는 “영화라면 마지막 장면에 더 새로운 앵글로 의미를 부여했을 텐데, 다음 이야기가 진행되는 드라마의 특성상 시청자가 받아들일 만한 장면을 연출해야 했다”고 밝혔다. 황시목이 검거한 첫 번째 용의자가 자살하며 남긴 억울하다는 호소(1화)나, 두 번째 피해자 김가영(박유나)이 발견되는 장면(4화)은 빠른 박자의 음악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영상미로 극적인 분위기를 선사했다. 소 PD는 “김가영이 병원에서 깨어나는 장면 등 반전이 약했던 엔딩신은 음악을 더 긴박한 느낌이 나게 조정한다던가, 장면을 슬로우모션으로 표현하는 형식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려 했다”며 “사전제작 시스템이라 편집하고 회의를 반복하며 엔딩신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3. 감초, 단역까지… 묻히는 캐릭터가 없다
정의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움직이는 서부지방경찰청 검사 서동재(이준혁)는 자신이 따르던 검사장에게 버림받자 이후 황시목의 든든한 아군으로 변신한다. 한여진과 함께 특임팀에 들어간 용산경찰서 강력반 형사 장건은 성접대로 내몰린 경찰서장이 폐쇄회로(CC)TV 영상 복사를 간곡히 부탁하자 마음이 흔들린다. 피해자 박무성(임효섭)의 아들 박경환(장성범)은 “(숨진) 아버지가 불쌍하다”며 울고, 그의 거짓 자백을 받아내려 구타를 묵인한 용산경찰서 팀장(전배수)은 박경환을 찾아와 무릎 꿇고 사죄한다.
소재현 PD는 “극 중 어느 역할도 죽는 캐릭터가 없다”고 말했다. 작은 감초 역할까지도 명확한 성격과 색깔을 입혀 전체적인 흐름을 생동감 있게 끌어간다. 지난 16일에는 특임팀에서 묵묵히 황시묵을 돕던 감초 캐릭터 윤세원(이규형)이 진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중이 작았던 캐릭터가 한순간 핵심 인물로 부상하면서 반전의 묘미가 살아났다.
4. 우리 안에 숨어있는 각자의 정의
‘비밀의 숲’엔 절대악이 없다. 추리극에 흔히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범도 없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연과 행동의 이유가 있다. 늘 황시목을 못마땅해하는 부장검사 강원철(박성근)은 16일 방영된 12화에서 황시목이 이끄는 특임팀을 해체하려는 검찰총장에게 “검찰이 아닌, 검찰의 존재 이유를 지켜달라”며 해체를 반대해 자신만의 정의를 지키려 했다. 황시목의 의심을 받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창준(유재명), 상황에 따라 박쥐 같은 처세술을 보이는 서동재의 내면에도 각자가 믿는 정의가 있다. 선과 악의 구분이 없으니, 캐릭터 각각이 실제 존재하는 인물처럼 사실적이다. 소 PD는 “정의에 대한 이해와 생각은 모든 사람이 다 다르다”며 “이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소신을 지켜가는 모습이 사실감을 부여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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