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출신의 원로 법조인은 현직 때 콤플렉스가 있었다. 검찰 권력의 정점에 올라 남 부러울 게 없어 보였지만 그는 특수수사에 정통하지 못하단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따금 술자리에서 ‘나도 특수수사 좀 해봤다’는 걸 강조하려고 1년간의 짧은 특수부 근무경험을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거창한 ‘무용담'이 없다 보니 기억 나는 스토리가 없다. 전세계 검찰 중에서 가장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는 대한민국의 검찰 수장도 짧은 특수부 경력을 부담으로 느낄 정도니 특수부 검사들의 위상은 정말 특수한 셈이다.
검찰 출입기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실제로 그렇다. 지금은 다소 힘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한 명의 힘은 국회의원 10명이나 대기업 회장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휘두르는 칼에 정치권과 재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줄줄이 쓰러졌으니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입법로비 의혹으로 야당의 중진의원 3명이 한꺼번에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섰다. 그뿐이랴. 재계서열 30위권 대기업 중에 그 동안 검찰수사를 받지 않았던 오너를 찾기 힘들 정도로 재벌 회장들은 특수부 검사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 여의도와 대기업 정보원들이 1년 내내 특수부 동향을 주시하는 것도 그들의 무시무시한 힘 때문이다.
특수부 수사로 대한민국이 좌지우지 될 수도 있다는 ‘신화’가 형성되면서 큰 뜻을 품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검사들이 인사 때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해 입성을 노렸다. ‘특수부’라는 영광스런 타이틀을 생각하면 밤샘 야근쯤은 너끈히 버텼다. 인재들이 몰린 탓인지 그들은 검찰 내에서 대체로 승승장구했고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다. 1990년 이후 특수부의 상징과도 같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을 지낸 검사 10명 중 7명 이상은 ‘검찰의 꽃’이라는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특수부 검사의 위상은 ‘배드 뉴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공무원 비리 사건이라도 이들이 연루되면 급이 달라진다. 4년 전 김광준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사건이 대서특필 된 이유 중에는 그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시절 검은 돈을 받았다는 사실도 한몫 했다.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을 떠나도 ‘특수통’으로 대접을 받는다. 개업광고 때 특수부나 특수부장 경험을 앞세우는 건 고객들을 맞이하는 영업전략이다. 실탄이 풍부한 대기업 오너와 사업가들이 수사를 받게 되면 그들은 만세를 부른다. 억대 수임료는 기본이고 잘하면 그 이상이다. 홍만표(57) 변호사가 잘 나가는 특수부 검사 출신이 아니었더라도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그를 찾았을까.
이처럼 검찰에 몸 담았을 때는 물론이고 퇴직한 후에는 특수부 검사들은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특별한 책임감과 도덕성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홍 변호사가 상식을 뛰어넘는 연간 100억원 가량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온전히 그의 개인적 역량 때문만은 아니다. 전관 프리미엄에 특수부 이력이 붙은 탓이다. 그럼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을 앞둔 홍 변호사가 그 흔한 ‘송구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1억5,000만원 밖에 안 받았다’ 식으로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다.
과연 그렇게 당당한지 한번 묻고 싶다. 2010년6월 월간 ‘신동아’에는 단군 이래 최대 법조브로커로 통하는 윤상림과 어느 검사와의 관계가 윤씨 지인의 입을 빌려 자세히 실려 있다. ‘윤씨가 지리산의 한 관광호텔 지하 룸살롱에서 검사들과 술판을 벌였다. 종종 순천 같은 곳에서 여자들을 공수해 술을 먹곤 했다. 서울에서도 판검사들과 술을 자주 먹었는데 제일 기억나는 사람은 H 검사다. 그 사람은 정말 윤씨 덕을 많이 봤다. 2001년 H 검사의 모친상 때 윤씨가 거의 상주 노릇을 했다. 윤씨가 일일이 다 전화를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렀는지 모른다. 검사 한 명 모친상에 정치인이며 기업인이 그렇게 많이 올 수가 없었다.’ 이게 대한민국 특수부 검사의 숨겨진 단면이 아니길 바란다.
강철원 사회부 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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