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19> 개인보다는 팀을 생각해야 진정한 프로
알림

[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19> 개인보다는 팀을 생각해야 진정한 프로

입력
2011.02.20 13:02
0 0

몇 년 전 어느 신문 기사에서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강사 5명 중 1명으로 하일성을 꼽은 적이 있다. 솔직히 해설자로서야 그런대로 말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기 강사로까지 거론된 데 대해서는 쑥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내용을 떠나 강연 횟수로만 따지면 나는 분명히 대여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거라 자부한다. 10여 년 전부터 나는 정말 많은 강연을 해 왔다. 한때는 오라는 곳이 너무 많아 일주일에 3회로 강연 횟수를 제한한 적도 있었다. 잦은 강연으로 인해 해설자라는 내 본업에 소홀해질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강연은 주로 기업체나 대학에서 했고, 때로는 병원 등에서 하기도 했다. 나는 2000년에는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사회체육학과 겸임교수로 초빙돼 강의하기도 했고, 모교인 경희대학교에서도 겸임교수를 맡은 적이 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강의는 삼성그룹 사장단을 상대로 했던 강의다. 저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 경지에 오른 CEO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스포츠 분야에서 삼성 사장단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 강연에서 나는 인생을 야구에 빗댔다. 사실 강연을 앞두고 나는 걱정도 많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아는 분야의 이야기를 하는 게 최선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강연 후 반응이 좋아 나중에 한 번 더 초빙하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내 강연의 주제는 주로 야구다. 청중에 따라 내용은 다소 달라질 수 있지만 내 강연의 기본은 프로의 자질과 야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프로선수들은 승부를 전제로 살아간다. 매일매일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의 숙명이다. 프로라는 것은 미래에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당장 필요한 사람이다. 야구를 비롯해 프로스포츠에서 용병을 수입하는 것도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닌 당장의 쓰임을 위해서다. 프로란 당장 활용할 수 있으면서도 좋은 결과까지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프로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이기기 위해 기록을 단축하거나 경신한다. 프로는 취미가 아닌 직업이요, 목숨을 건 게임이다. 그래서 결과에 의해 모든 게 증명된다. 프로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져야 한다. 상대가 나를 믿어주는 것보다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게 우선이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면 남도 나를 믿어주지 못한다.

프로에서는 늘 1군과 2군이 있다. 대체로 1군이 기술적으로 크게 앞선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2군에도 1군 선수 못지않게 뛰어난 재목들이 있다. 1군과 2군의 가장 큰 차이는 책임감이다.

스스로 프로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진정한 프로다. 때문에 프로는 만족이 없다. 늘 자신을 질책하며 현재의 위치보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게 프로다. 프로는 승부를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승부를 즐길 수 있어야 프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승부는 자신과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다. 자신과의 승부에서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천하의 이순철(현 MBC SPORTS 플러스 해설위원)과 양준혁(현 SBS ESPN 해설위원)이 안타 1개를 놓고 기록원들과 싸운 적이 있다. 1년에 100개가 훨씬 넘는 안타를 치는 양준혁이지만 안타 1개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다 퇴장까지 당하기도 했다.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는 "뭐 그리 쩨쩨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안타 1개 차이로 연봉 수천만 원이 왔다갔다하기도 하고, 타이틀의 주인공이 가려지기도 한다. 프로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이기심이다. 팀보다는 자신의 기록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진정한 프로는 자신의 기록도 물론 중요하지만 팀의 승리를 먼저 생각한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명장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이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남긴 말이다. "프로선수는 등 뒤에 새겨진 이름보다 가슴에 새겨진 이름이 먼저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등 뒤에 새겨진 이름은 개인 이름이요, 가슴에 새겨진 이름은 팀의 이름이다. 개인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라는 뜻이다. 한국 최고의 투수였던 선동열은 2004년 말 삼성 감독에 부임하면서 "내가 원하는 선수는 소질이나 기술이 좋은 선수가 아니라 팀의 승리를 위해 책임감을 갖고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라소다 감독의 말과 맥을 같이 한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프로는 냉정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 결과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팀을 위한 것이다. 진정한 프로는 팀 승리가 있어야 개인기록도 빛난다는 것을 안다.

나 또한 늘 프로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나는 프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평가하는 것은 내 자신이 아니라 남들이다. 남의 눈에 비친 내가 프로로 몇 점이나 받았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 아내와 딸들이 나를 프로라고 인정한다면 인생에서 최소한의 자부심은 느낄 만할 것 같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