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사람들' 대표 김수연 목사
“아유, 책이 그렇게 재미있니? 아빠가 다른 건 몰라도 우리 현준이 보고 싶은 책은 얼마든지 사줄게. 약속!”
아빠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 아이는 혼자 가스 불을 켰다가 불이 나자 11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고, 그대로 일곱 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돈 직장 명예 등 부족할 것 없었던 아빠의 우주는 그렇게 무너졌고 지키지 못한 약속은 평생 가슴에 사무쳤다.
무작정 책을 사 모았고, 책이 없어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산간벽지, 농어촌, 섬마을 등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보냈다. 애끓는 심정으로 전 재산을 털어 책장과 책을 사 보내며 쓴 돈이 수억원인지 더 많은지는 일일이 기억도 못 한다. 수 년 뒤 목회자의 길을 택했고 본격적으로 전국에 작은도서관을 짓기 시작했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 김수연(67) 목사는 그렇게 30년을 전국에 책 배달하는 ‘책 할아버지’로 살아왔다.
김 목사를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행복한도서관에서 만났다. 방송기자였던 그가 책 보급 사업에 뛰어든 건 아들을 떠나 보낸 1984년부터다. 처음엔 책 기증을 하다가 87년부터는 기자생활을 접고 도서관 건립에 나섰다.
“지금도 화재사건만 나면 마음이 아려요. 그 죄 없는 아이가 떠난 이 세상에 나 같이 쓸모 없는 이가 살아 있다는 죄책을 극복할 길이 없었어요. 모범적인 삶, 내 쓸모를 찾는 것이 아이에 대한 내 도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들과 한 ‘내 생애 단 한 번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심정으로 책 보급 일을 벌였습니다. 집안 대대로 책을 귀중히 하라는 가르침도 있었고요.”
그가 가리킨 도서관 한쪽 벽에는 김종서(1390∼1453) 장군의 유훈이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사람은 저마다 재물을 탐하지만 나는 오로지 내 자녀가 어질기를 바란다. 삶에 있어서 가장 보람된 것은 책과 벗하는 일이며….” 김 목사는 김종서 장군의 18대손이다.
그렇게 전국 작은도서관과 학교마을도서관을 세웠다. 처음에는 사재를 털었고 단체가 자리를 잡은 뒤로는 맥킨지, KB국민은행 등의 후원으로 작은도서관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강원 고성에서부터 제주 마라도까지 전국 251곳 학교마을도서관을 개설했고, KB국민은행 후원으로 2008년 시작한 ‘고맙습니다 작은도서관’은 지금까지 44곳에서 문을 열었다. 올해에는 7곳이 추가된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녀요. 책만 보내주면 그만이 아니거든요. 도서관을 어떻게 설계해야 아이들이 편안하게 머물며 책을 볼 수 있을지 회의도 하고, 프로그램도 지원하고요. 책 읽는 문화를 알리는 강연도 해요. 그렇게 정신 없이 사는 사이 머리만 하얘졌네요.”
30년이나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김 목사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눈을 빛낸다. “현장을 다녀보면 여전히 농촌이나 산간 아이들이 겪는 문화적 소외감은 상상 이상이에요. 예전처럼 공동체가 든든해서 보완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마을 주민들을 한데 모을 학교마을도서관을 매달 1곳이라도 더 짓는 게 목표에요. 그렇게 한 아이에게 단 한 권의 책이라도 더 나눠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어요.”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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