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탐구]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잠룡 치고 계파를 이루지 않은 이는 드물다. ‘정치는 세(勢)’란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홍준표 경남지사는 계파로 분류할 수 없는 희귀한 예다. 22년 정치 인생 동안 누구 계보에 속해본 적이 없다. 자신이 계파 수장이 돼본 적도 없다. 그저 ‘홍준표’ 이름 석자로 정치판을 누빈 별종이다.
홍 후보는 과거 사석에서 그 자부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이제껏 자력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서울에 1만4,000원 쥐고 올라와서 검사 하고 의원 할 때까지 누구 빌 붙어서 한 적 없다. 내가 이명박한테 빌 붙었나, 박근혜한테 빌 붙었나. 이회창 총재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홍 후보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붙여준 ‘독고다이’(혼자 하길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란 별명을 썩 좋아한다.
‘개혁보수’가 당을 나가고 그나마 유력 주자로 여겨졌던 인물들이 줄줄이 불출마 선언을 한 공백 속에 홍 후보가 들어섰다. 구심 없는 자유한국당, 위기를 맞은 보수라는 시대상황이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깡의 정치
믿을 게 자기 자신 밖에 없으면 강해지는 건 깡이다. 지금도 홍 후보는 대중 앞에서 연설할 기회만 있으면 어린 시절 “머리로 이해한 게 아닌 지친 몸과 아픈 시간으로 기억한 가난”을 고백한다. 2007년 이명박ㆍ박근혜 당시 후보가 치열하게 붙었던 한나라당(현 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그도 출마했을 때다. 어린 시절 시장에서 ‘달비’(부녀자의 머리카락) 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일당 800원을 받고 현대조선소 앞 백사장에 쌓인 철근 쇳조각을 지키던 아버지 얘기에 ‘서민 당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1972년 2월24일 새벽 서울에 ‘유학’ 올 때 손에 쥔 건 단돈 1만4,000원이었지만, 그의 자존심은 1억4,000만원을 가진 것보다 컸다. 그는 지금도 고려대 법대 재학 시절 미팅에서 자신이 대구의 어느 명문고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 여대생 험담을 하곤 한다.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 볼품없이 마른 고시생인 자신에게 “사법고시에 붙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며 결혼을 반대한 장인 얘기도 단골 메뉴다.
이런 깡은 그를 ‘모래시계 검사’로 만들었다. 서울지검에 재직하던 1993년 그는 ‘슬롯머신 사건’ 수사를 밀어붙여 ‘6공(노태우 정권)의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을 비롯해 권력 실세들을 구속시켰다. 이후 평균 시청률 50.8%의 신화를 쓴 드라마 ‘모래시계’의 소재가 된다. 스타 검사가 된 그를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영입했고 1996년 신한국당 소속으로 서울 송파갑에 출마해 첫 배지를 달았다.
말의 정치
홍준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말이다. 국회의원 시절 홍 후보가 TV토론에 나온다고 하면 상대 당은 “대체 말로 홍준표를 당할 사람이 누구냐”며 대적할 의원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천성이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부인 이순삼 여사가 아침마다 옷 매무새를 만져주며 “오늘은 밖에서 말 좀 줄이세요. 당신은 기운이 입으로 다 빠져나가서 살이 안 찌는 거예요”라고 당부한다고 할까.
말의 정치는 막말 논란과 촌철살인 사이를 오간다. 의원 시절 내내 ‘저격수로’ 불렸던 그는 최근 ‘홍트럼프’란 별명도 얻었다. 이번 대선에 뛰어들어서도 매일 설화다. “지금 1등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 “TK(대구경북)는 살인범도 용서하지만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쏟아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그는 무죄를 강변하려 “유죄가 나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자살을 검토해보겠다”는 극단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반면, 지지기반으로 삼아야 하는 극렬 보수층을 의식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진 않는다. “춘향인 줄 알고 뽑았더니 향단이었다”는 말도 박 전 대통령이 몸통이 아님을 강조하는 뜻이 내포돼있다.
섬의 정치
변방의 섬이던 그가 중심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건 2008년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다. 이어 2011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올랐고, 2012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마침내 당 대선 후보까지 확정돼 모든 정치인의 꿈인 대통령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만만찮다. 2심에서 무죄를 받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을 남겨둬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굴레를 완전히 벗지 못한 게 대선 레이스 내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같은 보수진영인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이를 들어 “무자격자”라고 맹공하고 있다. 만약 홍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시작과 동시에 헌법상 불소추 특권도 적용된다.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법원도 재판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를 방지하려면 재판 중인 자는 대선에 출마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헌법학자도 있다.
후임 도지사 보궐선거를 막는 ‘꼼수’를 쓰고 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홍 후보는 “보궐선거 비용 지출을 막기 위해 4월 9일 사표를 제출하겠다”고 공언했다. 대선에 입후보하려면 선거 30일 전인 4월 9일 자정까지 도지사직에서 사퇴하고 지사 권한대행인 행정부지사가 경남선거관리위원회에 이를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하필 9일이 일요일이어서 문제다. 홍 지사의 사표는 즉시 효력이 발생해 대선 출마 자격을 얻지만 경남선관위 통보를 이튿날 하면 대선과 동시에 치르는 보궐선거는 하지 않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새 지사를 뽑게 된다. 선거법에 선관위 통보 시기와 방법에 대한 규정이 없는 걸 노린 것이다. 경남 지사가 공석인데도 도지사 보궐선거를 막아 지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홍 후보가 대통령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홍 후보의 정치 행보는 포용보다는 공격, 통합보다는 분열에 가까웠다. 대통령은 그러나 덧셈의 정치를 해야 하는 자리다. 중도로 지평을 확장해 대통령 자리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홍 후보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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