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연봉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미 대통령 연봉은 2001년 이후 4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억6,000만 원이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3일(현지시각)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말에 월급을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때인 2015년 9월 “당선되면 월급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미 CBS방송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 “대통령 연봉이 얼마인지도 모르지만, 연봉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백만장자’ 후버ㆍ케네디도 연봉 전액 기부
이런 선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실제로 31대(1929~1933년) 대통령 허버트 후버와 35대(1961~1963년) 대통령 존 F. 케네디도 연봉 그대로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은 상ㆍ하원의원 12년 간의 보수도 전액 기부했다.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엄청난 부호라는 점이다. 보수 따위에는 신경 쓸 필요 없는 ‘백만장자’다. 후버 전 대통령은 광산개발업자로서 남다른 수완을 발휘한 자수성가형 부자였고, 케네디는 주식과 부동산, 영화산업 투자로 성공한 가문의 ‘금수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버와 케네디를 합친 스타일이다. 부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공격적인 부동산 투자로 전 세계에 고급 골프장과 호텔을 거느리는 트럼프그룹을 일궜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그의 주요 재산의 가치는 37억 달러(약 4조3,000억원)에 달한다.
여담이지만, 후버 전 대통령과 케네디 전 대통령은 ‘불운한’ 대통령이라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후버 전 대통령은 당시 대공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떠안고 연임에 실패했다. 널리 알려져 있듯 케네디 전 대통령은 재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암살됐다.
트럼프 기부선언에도 반응은 ‘시큰둥’한 이유
대통령의 기부는 지도층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다. ‘사회 지도층’ 선행의 대표적인 사례랄까.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기부선언에 대한 반응은 영 시원치 않다. 미국 언론들은 기부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관련기사 ▶ 트럼프 대통령 연봉기부, 진짜로 기부하는 걸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기부 발표 시점이다. 백악관은 ‘기부 약속이 실제 지켜지는지’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답변을 피하다 이튿날 ‘연말에 전액을 기부한다’고 전했다. 둘째는 ‘기부 이력’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재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부액수가 적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포브스에 따르면 트럼프재단은 2001~2014년 1,090만달러(약 125억원)를 기부했는데, 이 가운데 트럼프 개인 돈은 2001~2008년 280만달러(약 32억원)로 재산의 0.08%에 불과하다(관련기사 ▶ 트럼프, 연봉 전액 기부한다).
게다가 트럼프재단은 지난해 기부금 유용 의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부할 곳을 결정하는데 백악관 기자단이 도움을 주길 바란다”며 “감시를 피할 방법은 기자단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고 대통령 당선 후에는이로 인해 사업체가 얻는 이익에 대해 모른 척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시민으로서의 납세 의무에 소홀하고 대통령의 중립성 의무도 가볍게 여긴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줄기찬 요구에도 자신의 납세내역을 공개하지 않다가 지난 14일(현지시각) 처음으로 2005년 1년치 납세실적을 밝혔다. 이 역시 해당 자료를 입수한 언론의 폭로 직전에야 나온 것이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05년 모두 1억 5,300만 달러(약 1,749억원)를 벌었고 세금으로 3,650만 달러(약 417억원)를 냈다. 약 24%를 세금으로 낸 셈이다. 언론들은 연 100만 달러(약 11억 5,000만 원) 이상 고소득자(39.6%) 세율과 비교하면 15.6%p 낮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이전연도 사업손실을 상각해 자산을 1억 달러 줄여 신고함으로써 수천만 달러의 세금을 탕감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즉 한 해에만 최소 수백억원의 세금을 덜 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이를 ‘합리적인 세금납부’라고 주장하지만, 공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40만 달러의 연봉 기부는 이에 대한 면죄부가 되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떠나도 사랑 받는 오바마의 기부 방식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 때마다 화살을 돌리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2009~2017년)의 기부 실적은 어땠을까.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연봉 전액은 아니지만 재임 내내 소득의 15~20% 가량을 꾸준히 기부했다. 매년 공개된 납세내역을 분석해 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집계된 2016년을 제외한 2009~2015년 7년간 총 250만 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계산하면 연평균 35만 달러로, 대통령 연봉의 90%에 달하는 수준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인세 수입 덕을 톡톡히 봤다. 대통령 당선 전 출간한 두 자서전, ‘아버지로부터의 꿈’과 ‘버락 오바마, 담대한 희망’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다. 재임 첫해인 2009년은 인세 수입이 정점(550만 달러)을 찍었고 노벨평화상 상금(140만 달러)까지 받아 가장 높은 소득을 올렸고, 가장 많은 액수인 173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럼에도 오바마 전 대통령의 소득 대비 기부 비율은 위에 언급된 세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퇴임 후에도 그에 대한 미국인의 사랑이 뜨거운 이유와도 무관치 않다.
기부 방식에도 잡음이 없었다. 2009년의 경우, 기부금 가운데 33만 달러는 국제구호단체 ‘CARE’ 5만 달러 등 40여개 자선단체로 골고루 전달됐다. 노벨상 상금 140만 달러는 참전 군인 가족 지원 재단인 ‘피셔하우스’에 25만 달러, 아이티 구호재단에 20만 달러 등 10여개 자선단체에 돌아갔다(참고로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상금 96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1억원 가운데 3억 원을 2005년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 발전기금으로 기탁했다).
우리나라 대통령 연봉 전액 기부는 MB가 유일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정은 어떨까.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연봉을 모두 기부한 사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5년 동안 연봉 전액을 복지시설에 기부했다. 그가 받은 대통령 연봉은 1억6,867만원(2008년)~1억8,641만원(2012년)으로 합산하면 총 8억7,152만원이다. 영부인이던 김윤옥 여사는 월급통장에 입금된 돈을 매달 어린이재단 등 다양한 사회복지 단체에 전달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2002-2006년)에도 연봉을 통째로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당시 실수령액이 6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는 즉시 ‘아름다운 재단’으로 자동이체했다”고 설명했다. 4년간 총 3억원에 이르는 액수다. 아름다운재단 측에는 “환경미화원과 소방관 지원에 신경써달라”는 당부만 전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2009년 재산의 90% 가량을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44억 상당의 자택만 남기고 나머지 331억 상당의 부동산을 출연해 ‘청계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다만 기부 배경과 재단 운영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앞서 그는 대선을 11일 앞둔 2007년 12월 7일 “내가 살 집 한 칸 빼고 모든 재산을 내놓겠다”고 전재산 기부 의사를 밝혀 상대 후보들로부터 “돈으로 표를 사나”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BBK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조사가 끝난 직후여서 도덕성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적지 않았다. 기부 방식도 문제였다. 제3재단에 기탁하지 않고 직접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것이어서 사회환원의 의미가 반감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에는 사업 지속성 논란도 불거졌다. 당초 재단은 빌딩 세 채에서 발생하는 연 11억원 임대수입으로 장학사업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재단은 2009년부터 6년간 91억원을 수입 가운데 27억7,300만원만 장학사업에 사용했다. 수입의 30%에 불과한 셈이다. 게다가 재단 출연 당시부터 있던 채무 30억을 갚지 못해 주요자산인 빌딩 한 채를 매각하면서 사업 실효성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임대수익이 줄어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장학사업을 포기하고 운영 목적을 변경하려는 시도가 복지부에 거부당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비록 힘이 빠지고는 있지만 이 전 대통령의 ‘전재산 기부’는 기부문화가 빈약한 한국에서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도 있다.
연봉 20% ‘청년’에 기부한 박근혜 전 대통령
얼마 전 ‘자연인’으로 돌아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연봉 일부를 기부했다. 본인이 직접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을 제안한 ‘청년희망재단’이다. 그는 2015년 9월 청년희망펀드에 사재 2,000만원 출연과 연봉 20%(매월 약340만원) 기부를 약정하면서 ‘1호’ 기부자가 됐다.
그러나 청년희망재단은 금세 기부금 강제 할당 논란에 휩싸였다. 재단은 출범 두 달도 안돼 1,400억 원 모금에 성공했는데, 눈치를 보던 대기업 총수들이 너도나도 기부행렬에 동참한 덕분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200억 원을 시작으로 한달 새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150억 원, 구본무 LG 회장이 70억 원 등 재계 순위에 따라 사재 출연 소식이 이어졌다. 정부에서는 강제 모금 의혹을 부인했지만 재계를 중심으로 “기업 팔을 비틀어 준조세를 징수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올해 출범 3년째를 맞은 청년희망펀드는 기금 모금 동력을 잃은 데다 지난해 예산 집행률이 45%에 불과해 사업 실적도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통령 한 마디에 모금이 시작되고 계획도 없이 재단이 급조된 때부터 이미 총체적인 사업 부실이 예견됐던 셈이다. 그러나 기부에 대한 평가를 할 여유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 자신의 앞날을 더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송은미 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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