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서열 1위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10일(현지시간) 같은 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사실상 버렸다.
외신들에 따르면, 라이언 의장은 이날 동료 하원의원들과의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지금도 앞으로도 트럼프를 방어할 생각이 없다”면서 “남은 기간 하원에서 다수당의 위치를 지키는 데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여성ㆍ인종ㆍ종교차별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 때문에 하원 선거도 위험해졌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전화회의에 참석한 한 의원은 “라이언 의장이 트럼프 지지를 철회한 것은 아니지만, 그를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면서 “향후 하원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돕는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른 의원은 “라이언 의장이 ‘트럼프와 함께 유세하지 않겠다’는 발언도 했다”고 소개했다.
실제 라이언 의장은 지난 주말 자신의 지역구에서 트럼프와 함께 공동유세를 할 예정이었으나,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7일 트럼프의 11년 전 음담패설 녹음파일을 폭로한 직후 그의 초청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앞서 라이언 의장은 트럼프의 음담패설에 대해 “구역질이 난다”고 맹비난했다.
라이언 의장이 결국 ‘트럼프 포기’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대선은 사실상 물 건너갔고, 이제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ㆍ하원 선거에서 승리해 다수당의 지위를 지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당을 살리고 차기 대선에도 대비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공개된 NBC뉴스ㆍ월스트리트저널(WSJ) 공동 여론조사(10월8~9일ㆍ500명) 결과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46%를 기록해 35%에 그친 트럼프를 11%포인트 앞섰다. 특히 제3당 후보를 제외한 클린턴과 트럼프의 맞대결 양자구도에서는 지지율 격차가 14%포인트(클린턴 52%ㆍ트럼프 38%)까지 벌어졌다. 대부분 미국 언론은 현재 클린턴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상ㆍ하원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은 트럼프발 역풍으로 연방의원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상ㆍ하원 중 한 곳, 또는 두 곳 모두 다수당의 지위를 민주당에 내줄 수도 있는 처지인 것이다.
한편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자신을 버린 라이언 의장을 향해 "예산과 일자리, 불법 이민 등을 다루는 데 더 시간을 쏟아야지, 공화당 대선후보와 싸우는 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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