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지난달 9일 부산 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항의해 주한 일본대사를 소환한지 거의 한 달이 지나가면서 한일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의 공백 기간으로는 역대 최장으로,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한 항의로 대사를 소환했다가 12일만에 귀임시킨 기록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이처럼 일본이 소녀상 설치에 강공 모드를 유지하는 데는 공관 앞 소녀상이 국제법에 위배돼 국제적 명분을 쥐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외교적 갈등으로 확산돼도 자신들이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외교부도 “공관 앞 조형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본의 주장에 밀려 수세적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본의 국제법 위배 주장은 근거가 미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국제재판소 회부를 제안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이 근거로 드는 국제법은 1961년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22조 2항의 ‘어떤 침해나 손해에 대해서도 공관지역을 보호하며, 공관의 안녕을 교란하거나 품위를 손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단계를 밟을 특별한 의무를 갖는다’는 조항이다. 이 조항은 국가간 평화ㆍ우호 관계에 필수적인 외교ㆍ영사활동을 보장하고, 대사관ㆍ영사관에 대한 폭력행사를 방지한다는 취지로 1996년 7월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 정문 차량 돌진 사건이나 2012년 7월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트럭 돌진 사건 등은 비엔나 협약을 위반한 대표 사례다.
하지만 집회나 시위, 폭력행사 등의 방해 행위가 아니라 조형물 설치가 이 조항을 위반한 것인지 대해서는 명확한 국제법적 판례가 없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형물 설치와 관련해서는 판례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명확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며 “국제재판소에 회부하더라도 국제법 위반으로 결론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소녀상이 공관의 안녕을 교란시킨다고 볼 수 없으며 설령 공관의 품위를 손상시킨다고 하더라도 모든 적절한 단계를 밟지 않았다는 것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적절한 단계를 밟을 의무’는 공관의 품위 손상 정도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지는데 일장기 등이 불태워지는 것과 비교하면 소녀상 설치는 그 의무 정도가 약하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은 “일본 정치인들의 국제법 위반 언급은 국제법적 근거가 부족한 정치ㆍ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만큼 국제법과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우리가 오히려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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