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식
주필

등록 : 2017.01.26 16:50
수정 : 2017.01.26 16:50

[황영식의 세상만사] 표현의 자유

등록 : 2017.01.26 16:50
수정 : 2017.01.26 16:50

‘표창원 전시회’ 논란은 쓴웃음 남겨

모두를 웃게 하는 풍자, 헐뜯기와 달라

상투적 칼질로 집단희열 일깨워서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소개로 열린 시국비판 풍자 전시회 ‘곧 바이(soon bye)’가 중도 폐막했다.

개막 4일 만인 24일 보수단체 회원이 논란의 ‘더러운 잠’을 파손, 경찰에 연행하면서 그림도 증거물로 수거됐다. 다른 작품도 자진 철거됐다. 국회의 철거 요청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또 추가적 작품 파손 우려에서 참여 작가들이 회수했다고 한다. 전시회는 민간 시설에서 계속된다지만, 표 의원이 25일 공개사과에 나선 만큼 ‘표창원 전시회’ 논란은 사실상 일단락됐다.

그런데도 뒷맛이 개운찮다. 우선 논란의 매듭 절차가 어색하다. 표 의원은 스스로의 정치도의적 책임을 끝내 부인했다. 그는 24일 자신의 SNS에 올린 ‘시국풍자 전시회 관련 사실관계 및 입장’에서 전시회가 자신의 요청과 국회 사무처 설득으로 이뤄졌다면서도 ‘더러운 잠’에 대해서는 ‘단순 소개자’인 자신에 책임이 없음을 강조했다. 국회 사무처가 애초에 국회 내규에 의거, ‘정쟁 등의 논란 발생 우려가 있는 풍자화를 빼는’ 조건으로 시설 사용 허가를 했다는 사실은 슬쩍 가렸다. 그리고는 ‘표현의 자유’를 들어 철거 요청에 대한 판단은 순전히 작가들의 몫으로 미루었다. 사무처를 설득해야 할 정도로 공 들여 소개한 전시회라면, 논란 해소에도 적극 개입하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다.

그는 공개사과에서도 무엇이 잘못인지 분명히 밝히지 못했다. 이른바‘사과의 진정성’을 떠올릴 만하다. 그의 사과는 ‘마음이 상하고, 우려를 표명한’ 많은 사람들, 소속 정당이나 새누리당 등 다른 정당, 특히 여성에게 상처를 드린 점을 밝히고, ‘이유를 막론하고 책임진다’는 게 전부다.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이 부적절했다든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부 오해가 있었다는 등의 진정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끝내 밝히지 않은 사과의 진정한 이유는 오히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나 안희정 충남지사의 언급에서 나왔다. 우 원내대표는 25일 표 의원에 대한 징계절차 돌입을 밝히면서 “이 문제는 표현의 자유보다 여성 모독이 쟁점”이라고 지적했다. 안 지사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작품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무리 정당해도 성별 지역 인종 학력 장애 등 일체의 차별은 금지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확인했다”고 토로했다. ‘더러운 잠’이 다른 차별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역시 ‘여성’이 관건이다.

그러고 보니 전시회에 대해 두드러지게 반발한 것은 여성이었다. 여당이나 보수단체의 반발에야 눈을 감더라도 여성단체가 들고 일어났고, 전통적 지지기반으로 여겨져 온 여성민우회까지 가세한 상황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촛불ㆍ탄핵 정국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여론도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26일 리얼미터 발표로 확인됐듯, ‘국회전시’에 응답자의 53.9%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보였고, 그림 자체에 대해서도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42.7%에 달했다. 4월말 5월초에 치러질 것으로 보이는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전 대표가 부동의 지지도 1위를 지키고 있는 민주당이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일이 없도록, 위험관리에 진력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당 차원의 전략적 고려가 표 의원의 사과를 부른 셈이다.

그런데 ‘더러운 잠’ 자체는 정말 문제가 없나. 개인적으로 여성단체의 ‘여성 모독’ 주장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인 것은 선거 결과에 따른 우연일 뿐, 남성 대통령을 똑같이 비하해도 논란의 소지는 여전하다. 어떤 예술작품이 제대로 ‘풍자’라고 불리려면 최소한 풍자대상조차 커다란 명예감정의 손상이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전통 탈춤이 하층민은 물론이고 지배층까지 웃겼고, 과거 ‘YS는 못 말려’나 ‘콜 총리 농담집’에 YS나 콜 총리도 웃었다.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아 ‘처형일’만 기다리는 대통령에 상투적 칼질을 해서 집단희열을 일깨우려는 것이라면, 이미 창의성이 핵심인 예술과 거리가 멀다. 또 그런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암울하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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