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가구 늘며 소비문화 변화
사육환경 좋은 동물복지 식품 인기
패션계는 동물 소재 사용중단 선언도
“애용하던 화장품 브랜드 OOO가 중국 수출을 시작했다. 이제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ㆍ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가 아니라니…”
“동물실험 안 하는 화장품 찾기가 쉽지 않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동물실험을 하는 화장품은 쓰지 않겠다”
동물복지에 가치를 두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윤리 소비’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동물실험 반대’, ‘#크루얼티 프리’ 등 해시태그를 단 구매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반려동물 보유 가구 수 증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발표한 ‘2017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가구 중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율은 28.1%로 네 집 중 한 집 이상에 달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동물 친화적인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윤리 소비’가 새 소비 문화의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윤리 소비’ 신 풍속도를 브랜드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자사 제품이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인증마크를 달거나 동물실험 반대 서명 캠페인 등을 벌이며 윤리적 기업임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일종의 마케팅기법이다.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소비자를 모으기 위한 것으로 이 경우 반드시 기업이 윤리 소비에 동의한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된 화장품법에 따라 동물실험을 실시한 화장품이나 동물실험을 한 원료로 만든 화장품의 수입 유통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생산 제품이라도 수출되었다가 역수입되는 제품의 경우 국내 동물실험 제한 대상에서 벗어나는 등 개정 화장품법의 ‘구멍’은 여전히 넓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그 이전부터 동물실험을 하지 않아 온 기업들은 너도나도 ‘원조’ 동물복지, 동물 친화적인 기업 이미지를 알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 아로마티카는 전 제품에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 유래 원료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홍보한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에 따르면 아로마티카는 동물실험 반대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중국 시장 진출을 포기했을 정도로 동물복지를 브랜드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있다. 영국 화장품 브랜드 더 바디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기업은 올해 초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동물 실험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여는 등 동물 친화적 경영을 통해 윤리적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
뛰어오르는 토끼를 형상화한 비동물실험 인증마크가 부착된 상품을 고르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소비자들도 있다. 화장품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동물실험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화장품 관련법이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이후에도 해당 브랜드가 중국에 수출된 이력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 브랜드 목록을 공유한 네티즌은 “중국 수출 이력 때문에 착한 화장품 리스트에서 제외됐던 브랜드가 중국 수출을 포기해 다시 목록에 포함됐다”며 “어찌나 기쁘던지 같이 보려고 가져왔다. (동물 실험을 하는 것을) 몰랐을 땐 그냥 썼지만 알게 된 이상 골라 쓰고 싶다”고 강조했다.
동물 복지를 위한 윤리 소비는 화장품에 그치지 않는다. 동물 복지 축산을 통해 생산된 ‘동물복지 식품’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인도적으로 사육되고 스트레스가 적은 환경에서 자란 축산물에 대한 선호도가 늘어난 까닭이다. 이러한 현상은 동물들이 기존 환경보다 한 뼘이라도 넓은 공간에서 덜 고통 받고 자라 인도적으로 도축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인조가죽, 페이크 퍼(Fake furㆍ인조모피) 등 동물 털이나 가죽을 원료로 하지 않는 패션 제품도 윤리 소비의 한 축을 이룬다. 그 과정에서 ‘패션 아이콘’으로 알려진 연예인들이 윤리 소비에 앞장서며 긍정적 인식 확산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SNS를 통해 모피쇼 개최에 반대하고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모피 생산과정을 회피하지 말고 한 번쯤 보고 선택하자”고 강조하는 등 모피 반대 운동을 해온 가수 이효리, 슈퍼모델이면서 동물 보호 운동가로 알려진 지젤 번천 등이 대표적이다.
이효리는 2012년 발간한 에세이집을 통해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그까짓 개가, 고양이가, 동물들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보다 더 약한 존재가 동물들이다’라며 ‘(동물을) 대변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번천 역시 모피 반대 운동 외에도 야생 동물 불법 밀수 및 밀렵 차단을 위한 유엔 친선대사로 활동했다. 그는 2016년 유엔 세계야생동물의날 기념 연사로 나서는 등 동물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견인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아울러 윤리적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일부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모피, 앙고라 등 동물성 소재 사용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 아르마니를 비롯해 국내 브랜드도 앞다퉈 질 좋은 페이크 퍼 제품을 선보이면서 인조모피가 값싸고 볼품없다는 인식은 사라지는 추세다. 잔인함 없는 패션(cruelty-free fashion)이 또 다른 셀링 포인트가 된 것이다.
한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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