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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서 100m 달리는 느낌" 방호복 입고 메르스 투석 치료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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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서 100m 달리는 느낌" 방호복 입고 메르스 투석 치료 지원

입력
2015.06.2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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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경희대병원 인력 부족에 자원

"보호안경에 마스크ㆍ장갑까지

4시간 치료하다 보면 구토 증세"

감염 두려움에 가족들 만류 불구

"한번뿐인 인생 의미있게 살고싶어"

간호사 김진연씨가 25일 서울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러 가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8일 동안 이 병원 숙소에서 지낼 예정인 김씨는 "9살 아들이 태어난 후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건 처음"이라며 "아들이 걱정할까 봐 출장을 다녀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간호사 김진연씨가 25일 서울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러 가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8일 동안 이 병원 숙소에서 지낼 예정인 김씨는 "9살 아들이 태어난 후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건 처음"이라며 "아들이 걱정할까 봐 출장을 다녀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사우나 안에서 100m 달리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25일 강동경희대병원에서 만난 15년차 베테랑 간호사 김진연(38)씨는 방호복과 보호장구를 껴입고 환자를 치료한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김씨는 고려대 안암병원 소속 간호사지만, 24일부터 강동경희대병원에서 투석 치료를 돕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76번)가 이 병원 응급실에 왔던 날 인공신장센터(투석실)를 이용했던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되면서 병원이 20일 전면 폐쇄됐고, 투석 환자 70여명은 병원 내에 격리 입원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틀에 한 번씩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이 병원 간호사 11명으로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 수도권 17개 병원에서 24명의 간호사가 지원 근무를 하고 있다.

간호사 업무 중에서도 가장 전문성을 요하는 중환자실과 투석실에서 일해온 김씨도 “보호장구를 겹겹이 입고 일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D등급 전신 방호복에 보호안경(고글), 의료용 마스크, 장갑까지 끼고 나면 옷은 금새 다 젖고, 고글엔 뿌옇게 김이 서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병실엔 에어컨이 작동하지만 방호복은 공기가 통하지 않아 찬 바람을 느낄 수 없다. 감염위험 때문에 40분마다 교체하게 돼 있는 마스크는 바꾸기도 전에 이미 흠뻑 젖었다. 장갑을 3개나 껴 무뎌진 손가락으로 환자의 혈관을 한 번에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상태로 4시간 동안 투석 치료를 한다. 김씨는 “고글에 땀이 비처럼 줄줄 흘러내려 앞이 안 보이고, 꽉 조인 마스크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어 구토가 나올 정도였다”며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왔는데도,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일하는 병원이 메르스에 노출됐다면 이런 고생은 피할 수 없었겠지만, 메르스로 폐쇄된 병원에 자진해서 일하러 가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여러 병원에 간호사 파견을 요청했지만 지원자가 많지 않아 강동경희대병원은 실제로 필요한 간호사 40명 중 절반 정도밖에 충원하지 못한 상태다. 김씨도 가족의 반대에 부딪혔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있고 아들을 돌봐주는 친정 부모님이 70대 중반의 고령이라, 혹시 모를 감염 위험 때문에 남편이 만류했다.

실제로 전체 메르스 환자 180명 중 병원에서 일하다 감염된 경우는 34명(18.8%)이나 되고, 이중 간호사가 12명으로 가장 많다. 특히 D등급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본 건양대병원과 강릉의료원 간호사들이 감염되면서, 의료인들의 두려움도 극에 달한 상황이다.

하지만 김씨는 “아들을 낳은 이후의 삶은 덤으로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한 번뿐인 인생을 의미 있게 살고 싶다”며 남편을 설득했다. 김씨는 아들 출산 당시 가족들이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할 정도로 출혈이 심했고 수술 후에도 이틀 간 혼수상태에 빠졌었지만, 극적으로 회복됐었다.

가족뿐 아니라 고려대안암병원의 배려도 있었다. 김씨는 “내가 강동경희대병원에서 8일간 일한 후 2주간 자가격리를 하면 고대안암병원 간호사들의 일이 많아지는데도, 나를 흔쾌히 보내주고 응원해준 덕분에 이렇게 지원 올 수 있었다”며 “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줘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김씨의 의료 봉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0년 전인 2005년 규모 7.6의 지진으로 7만5,000명이 사망하고 3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파견됐었다. 김씨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24시간 내내 나 스스로를 내던지는 경험을 하면서 ‘내가 살아있구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구나’하는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봉사활동에서 남편을 만나기도 했다.

이번 투석 치료 지원 역시 쉽지 않은 결정임에도 김씨는 “헌신적으로 일하는 강동경희대병원 간호사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씨는 “나는 이틀 일하고도 너무 힘들었는데 강동경희대병원 간호사들은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같은 간호사인 나도 직접 해보고 나서야 알았다”며 “그런데도 씩씩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 받았다”고 전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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