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006년 잇단 사고 계기, 전문가들 6개월간 공들여 개발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는 도심 환풍구 설치 기준 부재와 관람객의 안전불감증 등 여러 요인이 합쳐진 결과였다. 하지만 공연ㆍ행사장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정된 소방방재청의 안전매뉴얼만이라도 제대로 지켰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2006년 소방방재청이 국내 최초로 만든 ‘공연ㆍ행사장 안전매뉴얼’은 1년 전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MBC 가요콘서트’에서 11명이 압사한 사고, 같은 해 롯데월드 무료 놀이동산 개방행사에서 35명이 다치는 사고가 난 것을 계기로 개발됐다. 실내외 구분 없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민간단체가 주최하는 축제, 각종 공연ㆍ행사 등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매뉴얼이다.
이 매뉴얼에 따르면 주최 측은 안전관리요원을 배치할 때에 출입구, 사고 위험성이 있는 곳 등을 총괄책임 안전관리요원이 판단해 중요도 순으로 인원을 배치해야 한다. 특히 인기연예인, 10대 팬들이 많은 연예인, 평소 신변의 위협을 받는 자 등 출연자가 관중의 지나친 관심을 끌 것으로 판단될 경우 안전관리요원을 충분히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에서는 인기 걸그룹 ‘포미닛’이 출연해 환풍구로 사람들이 몰렸음에도 주위에서 이들을 제지하는 안전요원은 전무했다.
매뉴얼은 또 관객들이 이동식화장실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관람 중인 장면을 예시로 제시하면서 ‘고층건물 옥상, 담벼락 등에 올라가 구경하는 관객들의 위험행위를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비록 환풍구 위에 몰린 관람객의 위험성을 꼭 집어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경고였다. 특히 “내려오라”는 사회자의 안내방송 뒤 관객들이 그대로 환풍구 위에 서 있었지만 추가적인 제지 없이 그대로 공연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주최측의 안전 불감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매뉴얼 상 주최 측은 안전관리요원에 대한 사전 교육을 실시하고, 배치장소 및 행동요령을 숙지시켜야 하지만 이마저도 간과했다. 19일 경찰 발표에 따르면 행사계획서상 안전요원으로 배치된 직원 4명은 본인이 안전요원이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매뉴얼은 문화체육관광부, 경찰청 등 관계기관과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외국 사례를 취합하는 등 6개월에 걸쳐 완성시켰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어 참고용으로만 사용되고 있고 이번 사건에서도 ‘공허한 울림’에 그쳤다. 손기상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이라고 밝힌 이 매뉴얼만 지켰어도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며 “매뉴얼을 의무화할 수 없다면 재난대처계획서를 내지 않아도 되는 3,000명 이하 공연의 경우 규모별로 등급을 나눠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안전점검이라도 받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실내 공연장 및 3,000명 이상이 모이는 야외 공연 등에 대해서는 공연법 및 시행령에 따라 공연 및 행사장 안전매뉴얼을 마련했으나, 이 역시 법적 강제력이 없어 참고용으로만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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