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진 지음
문학과지성사ㆍ246쪽ㆍ1만3,000원
미국은 2003년 이라크가 유엔이 금지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국 내 전쟁 반대론자들은 조지 부시 행정부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가짜 구실을 만들었다는 '전쟁 찬성 음모론'을 폈다. 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전쟁 반대 음모'를 꾸미는 미국 내부의 적이라고 공격받았다. 전쟁 찬성 음모론이 '저항 음모론'이라면 전쟁 반대 음모론은 권력자의 필요에 의해 제기된 '통치 음모론'이다. 결국 1년 뒤 미국 정부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음을 파악하고도 전쟁을 개시했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음모론이 진실과 관계 없이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유병언의 죽음, 국가정보원의 사이버 여론조작처럼 굵직한 사건에 해명되지 않은 의문점이 있을 때마다 음모론은 고개를 들었다. 통치 권력은 음모론을 '편집증 환자의 망상'으로 낙인 찍고 공론장에서 쫓아내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둘러싼 음모론을 조직된 질문으로 재구성하려 시도했던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상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학자 전상진은 음모론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에서 벗어나 음모론의 사회적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는 음모론을 막스 베버의 '신정론'에 기대 분석한다. 신정론은 해명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종교에 기대 해명하는 것이다. 삶이 행복하다면 그것은 그 삶이 정당하다는 신의 뜻이고,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나중에 구원을 주려는 신의 뜻이다.
음모론은 상황의 원인을 신 대신 외부의 적대자에게 돌린다. 통치 음모론은 지배자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배 질서에서 벗어나는 현상을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다. 저항 음모론은 탄압받는 약자와 소수자의 무기다. 이들은 정부 권력 혹은 그 배후의 더 큰 권력이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논리를 편다. 저항 음모론은 사회 혁명의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전능한 지배자의 존재를 상정하기에 오히려 저항 의욕을 꺾을 위험도 있다.
저자는 음모론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그것이 해답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음모론은 사회 문제가 발생했지만 누구도 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 때 발생한다. 원인을 해명할 수 없으니 사람들은 음모론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음모론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간단한 설명방식이기에 모든 비판을 거부하게 한다. 한국의 정치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이유도 끊임없이 음모론을 제기하며 상대를 악마화하기 때문이다.
음모론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우선 음모론을 외면하지 말고 그것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면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음모론에 빠져 누군가를 악마화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우리 모두의 삶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이 세상에 손쉬운 문제 해결 방법이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비극적 관점'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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