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르포] 밤새 사이렌·비명 소리…'생지옥' 구마모토

알림

[르포] 밤새 사이렌·비명 소리…'생지옥' 구마모토

입력
2016.04.17 20:00
0 0
구마모토 마시키마치 종합운동장에 설치된 피난소에 할머나들이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구마모토 마시키마치 종합운동장에 설치된 피난소에 할머나들이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이틀 간격으로 규모 6.5와 7.3의 지진이 강타한 일본 규슈(九州)는 5년 전 도호쿠 대지진의 악몽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특히 피해가 가장 심한 마시키마치(益城町)는 ‘죽음의 도시’ 외엔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처참했다. 지붕은 가라앉고 아스팔트는 치솟아 하늘과 땅의 구분이 없는 듯했다. 14일부터 사흘 동안 470회가 넘는 여진을 겪은 주민들은 “앞으로 더 큰 지진이 올 수도 있다”면서 사색(死色)이 된 채 말문을 닫았다. 더 큰 지진의 전조라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마을 중심부의 한 쓰러진 가옥. 집주인 노다 히로아키씨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난감해하고 있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마을 중심부의 한 쓰러진 가옥. 집주인 노다 히로아키씨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난감해하고 있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연쇄 지진에 무너진 구마모토현의 한 가옥.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연쇄 지진에 무너진 구마모토현의 한 가옥.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여진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17일 새벽 5시 마시키마치에서 만난 모리시마 하야코(森島早子ㆍ90) 할머니는 파랗게 질려 있었다. 14일 밤 지진에 놀라 달려온 여동생과 함께 16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샜다는 할머니는 “작년 9월 아소산이 폭발한 적은 있지만 이런 지진은 처음”이라고 아직도 몸서리를 쳤다. 지진에 익숙할 것 같은 일본인도 냉혹한 자연의 맹위엔 답이 없다는 표정이다.

근처에서 만난 다카모토 다에코(60ㆍ여)씨는 지진으로 기울어진 주택 옆에 주차한 자동차에서 지내고 있다. 남편과 이발소 ‘치히로’를 운영한다는 다에코씨는 16일 밤 후쿠오카(福岡)에서 달려온 20대 장남과 함께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대피했다가 추위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초등학교에 대피소가 마련돼 있긴 하지만 한밤중에 진동이 몰아쳐 사람들이 한꺼번에 운동장으로 나갔다”며 “추워서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25년 된 이발소 건물은 폐가가 됐다”면서 “추위도 추위지만 대피소도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차에서 난방을 틀고 지낸다”고 했다.

대부분 주민들은 삶의 터전이 무너진 것보다 언제 다가올지 모를 여진을 더 두려워했다. 구마모토 시내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무라오카 가쓰유키(村岡勝征ㆍ65)씨는 “평생 이런 강진을 처음 당하고 보니 밤에 무서워서 잠을 못 잔다”며 “어느 정도 규모 지진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섭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민들은 그나마 해안이 멀어 쓰나미가 없는 게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시키마치 지역 취재를 마치고 산사태가 난 미나미아소(南阿蘇)지역으로 향했지만 지역경찰이 취재진의 차량을 막아섰다. 아소대교가 붕괴돼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고 경고했다. 오즈마치(大津町)에서 만난 다케시타(竹下ㆍ67)씨는 “자다가 엄청난 흔들림으로 2층의 딸이 뛰어나왔다”며 “겁이 나 이불을 뒤집어 쓰고 진동이 멈추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두 모녀도 인파로 넘치는 대피소를 갈 수 없어 자동차에서 지내고 있다.

구마모토 시내 편의점은 물자 공급이 안돼 진열대가 텅 비어있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구마모토 시내 편의점은 물자 공급이 안돼 진열대가 텅 비어있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된장국 받는 데만 2시간 걸렸어요”

구마모토현 중심지도 다를 바가 없다. 기자가 머문 숙소 1층은 피난민 천지다. 전기와 수돗물 공급이 끊겼지만 비를 피하기 위해 이재민들이 몰려든 것이다. 밤새 뜬눈으로 세우다 건물이 무너질듯한 여진에 1층으로 긴급 대피했을 때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30분~1시간 간격으로 몰아치는 진동에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로 밤새 아비규환이었다.

노트북과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피난민 수백명이 바닥을 점령한 구마모토 중앙구 청사로 발길을 돌렸다. 여진이 강타하자 200여명의 피난민이 한꺼번에 비명을 질러댔다. 생지옥이 따로 없다. 2시간을 헤맨 끝에 문을 연 편의점을 찾았지만 물품은 이미 바닥났다. 야시로(八代)시에서 식수를 지원하러 대피소로 나온 쓰노사카 미키(31ㆍ여)씨는 “물 공급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발을 굴렀다. 자위대원 마쓰모토(松本)씨는 “400명분 주먹밥 800개를 만들어 배급할 예정”이라며 “어제는 우메보시(매실절임) 반찬이 들어갔지만 오늘은 김과 쌀뿐”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두 자녀와 부인을 데리고 지친 모습으로 서있던 후지모토 다다카(39ㆍ자동차정비업)씨는 “어제 미소시루(된장국) 받는 데만 2시간 걸렸지만 오늘은 이마저 없다”고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피해복구는 이재민들을 망연자실하게 한다. 마시키마치에서 만난 노다 히로아키(野田弘明 56)씨는 “첫날 지진 후 돌아와 집청소를 하다 더 큰 지진으로 숨진 경우가 대여섯명”이라고 전하면서 “100년은 안심이라며 집을 지었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한국에는 정말 지진이 없느냐”고 물은 뒤 “일본 정부가 가설주택부터 지어야 하는데 아직 마을사무소에서 나오지도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의 도로 아스팔트는 튀어오르고 찢겨져 걷기도 힘들어 졌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의 도로 아스팔트는 튀어오르고 찢겨져 걷기도 힘들어 졌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마시키마치 마을회관 앞에서 긴급식량 배급을 준비하는 자위대원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마시키마치 마을회관 앞에서 긴급식량 배급을 준비하는 자위대원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