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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개입해 박근혜 정부 압박… 한일 위안부 합의 졸속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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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개입해 박근혜 정부 압박… 한일 위안부 합의 졸속 타결”

입력
2017.12.27 17:0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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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日 설득 넘어가 양보 압박

이병기-야치 2개월 만에 잠정 합의

정부, 국내 반발 예상 사안도 대폭 수용

靑 “국제무대서 위안부 발언 말라” 지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외무상이 2015년 12월 2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외무상이 2015년 12월 2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2015년 12월28일 발표된 한일 위안부 합의는 협상 과정도 졸속 그 자체였다. 27일 공개된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TF)의 조사 보고서에는 협상 당시 박근혜정부가 합의 타결을 매우 서둘렀던 정황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국내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일본측 요구 사항을 협상 막판에 대폭 수용하는가 하면 합의 타결 뒤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을 삼가라는 청와대의 황당한 지시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TF는 피해자 의견 반영보다 한일관계 개선을 서둘러야만 했던 절박한 이유로 ‘미국의 개입’을 지목했다.

TF 보고서에 따르면, 한일 양국은 2014년 4월 첫 국장급 협의를 연 뒤 2015년 12월까지 1년8개월 간 12차례 협상을 열었지만 교섭에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2015년 2월 주요 협상 채널을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국장 간 협의로 옮기자 협상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병기-야치 채널 가동 2개월만인 2015년4월11일 4차 고위급 협의에서 잠정 합의를 도출한 것이다. 잠정합의에서 정부는 위안부 소녀상 문제와 ‘불가역적 해결’ 표현 등 양국 외교부 국장급 채널에서는 팽팽하게 맞섰던 쟁점들 상당 부분을 양보했다. 오태규 TF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위안부 합의는 고위급 비공개 협의에서 주로 이뤄지고 국장급 협의는 조연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이슈까지 터지며 협상 추동력은 잠시 떨어졌지만,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계기 양국이 연내 타결하자고 의견을 모으며 결국 12월23일 8차 고위급 협의에서 최종 합의가 타결됐다.

합의 이행을 위한 청와대의 과도한 지침도 눈에 띈다.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문구와 관련 외교부에 ‘기본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한 것이다. 합의에 포함된 내용이긴 하나 전시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발언권을 청와대가 앞장 서서 제한하려 든 셈이다.

청와대가 이처럼 합의 내용보다 타결 그 자체에 집착했던 데 대해 TF는 “박근혜 대통령이 연내 타결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당초 박근혜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한일정상회담을 연계하며 결과적으로 한일 수교 50주년에 닥쳐서야 타결을 서두르며 졸속 합의로 이어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미국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는 “협상 과정에서 일본은 ‘한국이 양보하지 않아 진전이 없다’고 미국을 설득했고, 미국이 다시 한국의 양보를 압박하는 악순환이었다”고 전했다.

TF도 “한일관계 악화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에 부담으로 작용함으로써 미국이 양국 사이의 역사 문제에 관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한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았다”고 분석했다. 한미일 3국 간 안보협력이 필요한 미국의 압박에 떠밀려 이뤄진 합의라는 뜻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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