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주운 폐지를 비싸게 사들이는 청년들이 있다. 올 초 사회적기업을 표방하며 활동을 시작한 러블리페이퍼의 두 대표 기우진(34), 권병훈(31)씨다. 종이박스 10㎏ 모으려면 온종일 걸리지만 자원재활용업체에 받는 돈은 고작 1,000원 안팎. 하지만 러블리페이퍼는 그 10배인 1만원에 사들인다. 사들인 종이박스를 재활용해 캔버스를 만들고, 예술가들이 여기에 작품을 그리면 그것을 팔아 다시 노인들에게 폐지를 산다. 기 대표는 23일 인천 부평동 사무실에서 “어르신들이 최저임금 정도는 받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 시작했다”고 말했다.
러블리페이퍼는 인천 봉사단체인 굿페이퍼에서 시작했다. 가정, 학교, 교회 등에서 나오는 폐지를 기부받아 판매한 수익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인들을 돕기 위해 기 대표가 2013년 설립한 단체다.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학교와 주위 지인들에게 부탁해 폐지를 모으고 졸업한 모교까지 찾아가 폐지를 기부받았다. 그러던 중 제지회사의 담합으로 인해 폐지 가격이 폭락해 수익이 급락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기 대표는 “돈이 있어야 어르신들을 지원해드릴 텐데 폐지를 팔아선 수익금이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폐지를 가공해서 파는 업사이클을 생각하게 됐습니다”고 회사 설립 계기를 설명했다.
러블리페이퍼를 설립 후 폐지로 만든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줄 재능기부 작가들을 모은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4시간 만에 150명이 모였고 이들에게 작품을 부탁해 올해 4번의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와 작품 판매로 얻은 수익금 400여만원은 모두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게 쓰였다. 현재 러블리페이퍼는 7명의 노인을 돕고 있다.
권 대표는 기 대표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이였다. 기 대표가 설립한 굿페이퍼 1기 멤버로 시작해 봉사활동을 하다, 기 대표의 제안으로 러블리페이퍼의 공동 대표가 됐다. “폐지를 기부 받아 실어 나르고 고물상에 갖다 파는 일은 대부분 육체노동입니다. 1년 넘게 하다 보니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기획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사회적경제를 실천하는 조직에서 월급 받으며 일하고 싶었지만 복지단체 말고 영리단체는 없더군요. 직접 운영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처음엔 거절했어요. 능력이 아직 없으니까요. 지금도 배우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캔버스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든다. 기 대표는 폐지를 캔버스로 만들어주는 기계를 구비할 수 있다면 고령의 어르신들을 직접 고용해 일자리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여가 프로그램도 기획해 하루 4시간의 노동 후 4시간의 여가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기 대표는 “폐지를 줍는 분들은 대부분 70대 후반에서 80대 어르신들인데 초고령 노인을 위한 일자리가 거의 없어요, 공공근로도 기간제약이 있어서 오래 할 수 없죠, 그분들의 삶을 질적으로 끌어올리려면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수는 물론 여가까지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러블리페이퍼는 최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내년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사전선발 업체로 선정됐다. 기 대표는 “올 한해 활동은 굿페이퍼의 프로젝트 같은 정도였는데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업체로 변모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했다. 권 대표도 “작가들에게 재능기부를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상품성이 높은 작품을 만들어 작가들에게도 수익을 돌려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기 대표는 “직접 정책을 제안할 순 없겠지만 정책의 기반이 되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캠페인을 펼치고 싶다”며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없애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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