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단독] 前 駐러시아 문화원장, 현지 대학생 상습 성추행

알림

[단독] 前 駐러시아 문화원장, 현지 대학생 상습 성추행

입력
2017.08.07 04:40
0 0

통역 등 담당 임시 채용 여학생에 범행

외교부, 자체 감사 끝에 파면 불구

검찰 고발은 안 해 ‘솜방망이 처벌’

“고발 없어도 수사할 수 있는데…” 미온 대처

러시아문화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러시아문화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외교부 고위 공무원이 현지에서 임시 고용한 여대생을 지속적으로 상습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파면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외교부는 자체 감사 끝에 해당 공무원을 파면했지만 형사처벌을 위한 조치는 취하지 않는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6일 한국일보가 단독 입수한 외교부의 주러시아대한민국대사관 공사참사관 겸 문화원장 박모(53)씨의 비위 제보 사항 조사 결과 및 박씨와 피해자의 진술서 등을 종합하면, 박씨는 2015년 7월 통역과 지원 업무 등 행사 준비를 위해 임시 채용한 현지 대학생 A(당시 20세)씨를 수 차례에 걸쳐 성추행했다. ‘유라시아 친선 특급’ 행사는 광복ㆍ분단 70년을 맞아 열차를 타고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행사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라시아 경제공동체, 한반도 평화 통일 기반까지 닦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에서 출발한 국가 사업이다.

박씨의 강제 추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박씨는 A씨 채용 이틀 뒤인 2015년 7월 17일 행사 참석 차 러시아를 방문한 당시 야당 B 의원을 영접하기 위해 공관 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가던 중 A씨 손을 수 차례 잡고 자신의 허벅지에 가져다 댔다. B 의원을 숙소로 데려다 준 뒤 공관 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A씨를 강제로 껴안고 키스도 했다.

이후 범행은 더욱 노골적이고 대담해졌다. A씨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술집으로 데려가서는 강제로 키스하고 가슴 부위도 만졌다. A씨가 “와이프도 있는 분이 왜 이러시냐”고 저항하자 박씨는 “와이프는 와이프고, 여자친구는 여자친구다”라며 A씨 손을 자신의 민감한 부위에 갖다 댔다. 휴일 오전 다른 직원들이 없는 틈을 타 자신의 집무실로 커피를 타오라고 시킨 뒤 재차 강제로 입을 맞추고, 웃옷 단추를 풀고 가슴을 만지는 등 추행했고, A씨가 사무실로 도망치자 쫓아가 계속 수치심을 느끼도록 했다. 이 밖에도 박씨는 술에 취하면 A씨에게 “보고 싶다”거나 “당신이 없어 컨트롤이 안 되요”라고 했고 “우리 집에 올래?”라는 등 추파를 던졌다.

박씨의 추잡한 행태는 넉 달이 지난 같은 해 11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제보가 입수되면서 알려졌다. 청와대로부터 사안을 넘겨 받은 외교부는 자체 감사에 착수해 나흘에 걸쳐 A씨와 박씨 진술을 확보했다. 박씨는 대체로 범행을 인정하고 “고위 공직자로서 부끄러운 행동을 해 죄송하다”면서 “상응한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진술했다. A씨는 “너무 무섭고 부끄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외교부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중앙징계위원회에 중징계를 의결했고, 징계위는 지난해 4월 박씨 행위가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며 중징계 중 가장 강력한 파면 결정을 내려 다음달 박씨는 파면됐다. 문화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지만, 대사관에 소속돼 외교부의 관리를 받는다.

반면 검찰 고발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당시 외교부 관계자는 “피해자가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 2차 피해를 막는다는 차원에서 검찰에 고발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라, 피해자의 고소ㆍ고발이 없더라도 수사할 수 있다. 검찰 수사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해외 공관에서의 성추행 사건이 빈발하고 있지만 이처럼 관련 사건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으면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쉬쉬’ 하는 외교부 행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박씨 사건은 지금까지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파면된 사실 정도만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을 받은 칠레 주재 박모 참사관이나 지난달 부하 여직원을 성폭행한 에티오피아 공관 외교관과 복수의 피해자들을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난 같은 공관의 현직 대사 역시 대외적으로 관련 의혹과 사건이 불거진 뒤에야 검찰에 고발됐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해외 공관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의 성 추문 사건은 단순히 외교부의 근무기강 문제로 접근해선 안되고, 국가 위신을 해치는 범죄로 여겨 정부가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잇달아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자 외교부는 지난달 무관용 원칙에 따라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감사 및 징계 강화, 신고 및 처리 절차 개선, 예방교육 내실화 등 대책을 내놓았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