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청순, 한국은 섹시. 두 나라 걸그룹을 비교할 때 나오는 공식이다. 일본의 우익 성향 네티즌은 한국 걸그룹을 향해 “차라리 포르노를 찍어라”고 야유를 퍼붓고, 거기에 발끈한 한국의 삼촌들은 “야동(Adult VideoㆍAV)의 나라에서 그게 할 말이냐”라고 응수한다. 걸그룹의 원조는 일본이지만 한국 걸그룹은 일본과 다르게 진화했다. 이제는 너무나 달라져서 아예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사람도 있고, 두 나라 걸그룹이 서로를 닮아간 탓에 차츰 차이가 사라지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비평의 흔적’(부크크,2015)은 2012년부터 영화와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비평을 써 온 윤광은의 첫 평론집이다. 그는 이 책 어디에서 자신의 비평관을 이렇게 요약했다. “하나의 작품은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아우른다. 때론 컨텍스트가 텍스트 소비 방식을 규정한다. 둘은 서로가 서로의 판단 준거이고, 긴밀하게 상호 교섭하며 파장을 방출한다. 이 지점에서 텍스트 비평과 컨텍스트 비평의 구분은 무의미할 때가 있다.” 지은이는 대개의 평자와 마찬가지로 걸그룹의 노출 콘셉트와 노출 경쟁을 기획사 사이의 과열 경쟁과 걸그룹의 짧은 활동 기간에서 찾는다. 거기에 첨가된 윤광은만의 견해라면 일본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본격적인 성 상품화 시장”이다.
일본에는 그라비아(graviaㆍ비키니 차림의 화보집과 영상물) 시장, AV시장 등 세분된 성 상품화 시장이 존재한다. 그 세분화 속에서 일본 걸그룹은 관능성을 탈색시킨 소녀ㆍ여동생 이미지를 차별화 전략으로 선택했다. 이들은 노출 콘셉트로 뮤직비디오를 찍는 경우에도 귀여운 인형을 연출한다. 일본의 인기 걸그룹 가운데 그라비아 활동을 병행하는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경향은 청순이다. 반면 한국에는 아예 성 상품화가 금지되어 있거나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중문화가 특정성별 대중이 소비하는 적나라한 하위문화마저 포섭하게 된다. 그 결과 “한국 메인스트림 걸그룹은 사실상 그라비아 아이돌 롤까지 수행”하면서 “확실한 19금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중파용으론 도무지 남세스러운 애매한 선정성”을 팔게 된다.
한국여성연구소가 엮은 ‘젠더와 사회’(동녘,2014)에 김예란이 쓴 논문의 한 대목도 윤광은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기에 충분하다. 한국 걸그룹 팬덤에서 독특한 현상은 30, 40대 ‘삼촌팬’이다. 삼촌이라는 이름의 30, 40대 팬덤은 소녀를 향한 남성의 시각적 소유의 욕망을 “아저씨와 여자 조카 사이”라는 가족관계로 치환함으로써, 걸그룹에 대한 성적 욕망을 천진하고 귀여운 아이를 위한 순수한 보살핌으로 희석한다. 롤리타 콤플렉스로 의심되기도 하는 삼촌팬과 걸그룹 사이의 이런 ‘밀당’ 역시 성인문화 시장이 열려 있었다면 극성을 부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본격적인 성인문화 시장이 없기 때문에 걸그룹이 경직된 대중문화 시장 안에서 대중문화가 소화하기 힘든 적나라한 하위문화를 떠맡게 되었다는 윤광은의 주장은 경청할 데가 있다. 도덕가들이 성인문화를 계속 억제해온 끝에 밤무대 쇼가 안방을 점령하고 ‘털기춤’ ‘골반춤’ ‘쩍벌춤’으로 무장한 걸그룹이 대학축제는 물론이고 고등학교 축제 무대마저 점령하게 되었다면, 우리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것은 없는 것일까? ‘걸그룹=삼촌팬’이라는 안전한 공식은 실재하는 청소년 팬을 보이지 않게 한다.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지만, 남성 지배적인 음악 산업에서 프로듀서, 매니저, 레코딩 엔지니어로 활약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 또 음악 속으로 들어가 보면 특정한 장르나 스타일에 따라 이른바 남성성과 여성성이 뚜렷이 구획되어 있다. 댄스 음악은 전통적으로 소녀 장르로 간주되며, 록이나 힙합은 남성의 전유물이다. 부모들은 딸에게 록 악기를 익히도록 하는 일이 별로 없고,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록 밴드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여자를 배제한다. 여성 뮤지션이 많은 미국에서도 여성이 록 음악을 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으며, 그들은 록커가 아닌 ‘록 하는 젊은 여자(rock chicks)’로 불린다. 문제는 걸그룹의 성상품화가 아니라, 음악 장르의 성별화인지도 모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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