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태성 기자

등록 : 2017.03.12 14:38
수정 : 2017.03.12 18:45

원화를 보니 색다르네~ 책 속 그림, 갤러리로 가다

등록 : 2017.03.12 14:38
수정 : 2017.03.12 18:45

이미경 펜화를 책으로 묶은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독자 요구로 전시회 열어

화가서 작가 전업한 존 버거

생전에 그린 드로잉 60여점

다음달 7일까지 전시

지난 11일 서울 서교동 땡스북스 2층 갤러리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의 작가 이미경씨가 자신의 구멍가게 그림들에 대해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남해의봄날 제공

“책만 봤을 땐 작업할 때 색연필을 쓰는 줄 알았어요. 직접 보니 펜화로 세부적 디테일까지 일일이 다 그린 것이더군요.”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엄청난 노동이 들어간 작업이란 걸 알았어요.” 12일 직장인 이미화씨와 김경미씨는 함께 전시를 보고 나온 뒤에도 “실물을 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며 1층에 설치된 전시 포스터를 여러 번 다시 들여다봤다. 이들이 본 전시는 서울 서교동 땡스북스 2층 더 갤러리 화이트 큐브에서 열린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원화 전시회다.

시골 외진 곳에 남아 있는 구멍가게들을 20여년간 그려온 이미경 작가의 작품들을 책으로 묶어낸 뒤 이를 기반으로 다시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는 15일부터는 서울 공릉동 ‘51페이지’, 다음달 12일부터는 충북 괴산의 ‘숲속작은책방’ 등 전국 동네 책방 10여 곳을 돌면서 내년 1월까지 이어진다.

책과 연계된 그림 전시는 최근 ‘100층짜리 집’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작가 이와이 도시오 작가의 전시처럼 어린이책 분야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다. 어린이용 책은 아무래도 그림 형식이 대중적이고 예쁜 것이 많은데다, 엄마들의 교육열에 올라타 아이들과 성인들을 한데 갤러리로 끌어들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원화전이 성인책 영역으로 번져가고 있다. 출판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성인 책 역시 빡빡한 문자의 나열보다는 감성적 그림이 첨가되는 경우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독자에게 부드럽게 다가설 수 있다는 장점도 작용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전시장에선 책과 함께 원화를 만나 볼 수 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의 경우 원래 원화 전시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10일 출간 이후 한달여만에 1만부 가까이 책이 팔려나가면서 “원화를 보고 싶다”는 독자들 요구가 빗발치자 원화 전시회까지 열게 됐다. 책을 낸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는 “동네 구멍가게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40~50대를 중심으로 소장용이나 선물용으로 대량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웃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와 감성이 이질적일 것 같은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책이나 전시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열광적인 호응 때문에 비슷한 콘셉트의 책을 또 하나 구상하고 있다고도 했다.

앞서 11일 열린 북토크 시간에 참여한 독자들도 그림 속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지 등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이미경 작가는 “구멍가게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던 20여년 전만해도 이게 과연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도 많이 고민했는데, 이렇게 전시까지 열게 돼서 무척 기쁘다”며 “다만 지금은 애써 구멍가게를 찾아도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고 말했다.

9일 서울 창성동 온그라운드갤러리에서 개막한 '존 버거의 스케치북'전은 작가이자 평론가로 유명한 존 버거의 드로잉 작품 60여점을 내걸었다. 온그라운드 갤러리 제공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원화 전시는 다음달 7일까지 서울 창성동 온그라운드갤러리에서 열리는 ‘존 버거의 스케치북’ 전이다. 올해 1월 2일 숨진 존 버거는 미술평론과 소설, 에세이 등으로 이름을 드날린 인물. 특히 1972년 내놓은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미술ㆍ영화 등 시각이미지를 다룬 책 가운데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힌다. 지금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이어진다. 건축가 승효상은 “작은 것에 보내는 따스한 시선, 그리고 (이로부터)얻는 행복이 저에겐 큰 가르침이 됐다”는 말을 남겼고, 소설가 김탁환은 “버거는 통해 ‘이전’과 ‘다음’을 소중히 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직접 그린 드로잉들을 내놨다. 화가로 출발했으나 글로 전업한 뒤 그래도 계속해서 그려낸 것이 드로잉인 만큼 버거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말년작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열화당 발행)에 실린 8점에다 아내에게 바친 드로잉 11점 등 모두 60여점이 전시됐다. 버거의 친구인 사진가 장 모르가 찍은 사진과 그간 국내에 번역 소개된 책까지 한꺼번에 다 나와있다.

9일 서울 창성동 온그라운드갤러리에서 개막한 '존 버거의 스케치북'전을 찾은 이들의 존 버거의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온그라운드 갤러리 제공

전시가 이토록 풍성하게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저자와 출판사 열화당과의 인연 때문이다. 해외 작가는 보통 에이전시를 통해 출간 계약을 맺게 되는데 버거와 열화당의 경우 직접 연락하며 모든 걸 상의해왔다. 버거의 아들 이브 버거는 한국 독자들을 위해 “세계화된 우리 세계의 비극적 뉴스는 모두 제쳐두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로 속삭이고 노래하길 희망한다”는 메시지까지 보냈다. 조윤형 열화당 편집실장은 “버거의 책을 10여권 이상 내왔는데, 아주 고정적인 단단한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다”면서 “버거의 드로잉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필력을 느낄 수 있는 데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그 점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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