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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기제, 농어촌엔 아직 강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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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기제, 농어촌엔 아직 강사도 없다

입력
2015.10.0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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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한 학기 동안 진로탐색… 체험활동 강화하고 교과시험 없애

교사들은 참여형 수업 낯설고 농어촌에선 체험 직업 종류 적어

학원가는 벌써 '자유학원제' 변질

전북 부안군 줄포중 학생들이 자유학기제 진로체험활동의 일환으로 대전 유성구의 사법체계 교육기관인 '솔로몬 로파크'에서 모의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배심원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유무죄 여부를 표시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전북 부안군 줄포중 학생들이 자유학기제 진로체험활동의 일환으로 대전 유성구의 사법체계 교육기관인 '솔로몬 로파크'에서 모의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배심원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유무죄 여부를 표시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전주 시내까지 차로 1시간 30분 걸리는 시골이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업체나 공공기관을 찾긴 힘듭니다. 고육책으로 낸 게 목수를 강사로 초빙해 학교 목공교실에서 진로수업을 진행하는 거였죠. 서울처럼 대학, 기업 등 다양한 기관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부러운 게 사실입니다.”

전북 장수군에 위치한 계북중학교에서 지난해 자유학기제를 운영했던 안상기(54) 교사는 그간의 고충을 이 같이 털어놓았다. 문화체험이라고 해봐야 매주 화요일 난타 공연팀이나 락밴드를 불러 공연을 관람하는 정도였다. 그나마 기존 방과후 활동을 통해 강사로 만난 인연이 없었으면 섭외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교육공약으로 학생들에게 중학교 한 학기 동안 교과 시험 없이 체험활동을 통해 장래를 스스로 모색하게 한다는 ‘자유학기제’가 내년 3월 전면 실시된다. 시행까지 반 년이 채 남지 않았지만 체험시설과 프로그램 부족, 일선 교사들의 업무가중, 예산확보 등 과제도 적지 않다. 자칫 학교 내 혼란과 지역 간 교육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체험 프로그램의 양과질 도농격차 심각

자유학기제는 지난 2013년 9월, 전국에 연구학교 42곳을 지정해 시범 시행에 들어간 뒤 매년 희망학교가 늘고 있다. 올해는 전국 중학교(3,186개교)의 80%인 2,551개교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들 학교들은 오전 중 일반 교과수업을 마친 뒤 오후에 토론, 애니메이션, 디자인, 요리 등 외부강사를 활용한 각종 선택활동과 진로체험 등을 진행한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 학교는 관련 인프라가 풍부한 도심과 달리 여전히 체험의 양과 질이 모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유학기제를 3년 째 시행 중인 충남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교가 읍 단위에 위치해 주로 우체국, 군청, 농협, 수협 등에서 직업체험을 할 수 밖에 없어 법조인, 의사 등 전문직에 대한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힘들다”며 “이런 곳까지 찾아 오는 강사도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프로그램 등 기관들의 준비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지난해 자유학기제를 총괄했던 전남 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는 “대부분 견학이나 단순 강의에 그친데다 일부는 방문 자체를 귀찮아 해 아이들을 방치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반면 대학, 연구기관, 정부청사 등이 모여있는 대전의 경우, ‘체험을 골라서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전 월평중의 최현 교사는 “일부 대학은 이미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을 개설했고 항공우주연구원, 국가기록원 등 연구기관에서 참여 요청도 쇄도한다”고 말했다. 자유학기제가 교육의 도농격차를 재확인 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주먹구구식 교사연수…교내 협업도 미지수

교사연수도 체계적이지 않다. 현재 교육부는 일선 학교의 자유학기제 담당교사를, 각 지역 시도교육청은 일반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연수효과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 목소리다. 강원 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는 “아직 연수를 못 받은 교사들이 자유학기제 담당 교사들에게 어깨 너머로 프로그램 기획 등을 배우고 있는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자유학기제는 교과시간이 변동되고, 진로체험을 해야하며,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이동해야 해 교무ㆍ진로ㆍ연구ㆍ생활부 등 각 부서의 유기적인 협업이 필수다. 하지만 교사들간 공감대 형성이나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은 곳도 적지 않다. 기존의 진로상담 교사에게 관련 업무를 떠넘긴 채 남의 일처럼 여기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유도는 자유학기제의 성패를 가를 요소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년째 자유학기제를 총괄해온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새 제도 시행에 따른 업무부담 때문에 교사들이 참여형 수업에 대한 고민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자유학기제 준비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선 최근 집중 선행학습 강좌가 등장하는 등 자유학기제가‘자유학원제’로 변질되는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다. 수업시간이 줄어 성적저하를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불안심리를 사교육 시장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전면 시행 무리라는 지적도

이같은 지적이 잇따르자 교육부도 매년 각 학교과 교육청 등에 재정 지원을 늘리는 등 애를 쓰고 있다. 2013년 48억6,000만원이던 자유학기제 지원예산은 올해 523억1,000만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교육부는 또 농어촌 지역 학생들을 위해 민간기업, 대학 등의 전문인력을 섭외해 학교로 찾아가는 ‘진로체험버스’ 를 운영할 방침이다. 또 체험기관 확보를 위해 최근에는 민간기업 및 공기업을 중심으로 업무협약(MOU) 체결에도 집중하고 있다. 1일 기준, 교육부와 자유학기제 및 교육기부 MOU를 맺은 기관은 총 144곳이다.

하지만 관련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경우, 이런 지원책들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관련 예산이 삭감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재익 교육부 공교육진흥과장은 “현장 의견을 반영해 내년에도 한 학교 당 올해와 같은 수준으로 예산을 지급할 방침”이라면서도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는 없어 국고 지원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준비상황에 맞게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남규 전교조 정책실장은 “자유학기제의 모델인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의 경우, 전체 학교의 75%까지 확대하는 데 무려 39년이나 걸렸다”며 “우리는 불과 3년 준비한 만큼 좀더 치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제도 도입은 긍정적이지만 학교 내 주체들이 제도 정착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지역사회와 기업의 훌륭한 자원이 현장에 잘 쓰이도록 정부가 연결고리가 돼야한다”고 조언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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