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측 "3인방 배후에 정윤회" 의심 "문건 6할 진실" "음해일 뿐" 맞서
미행설의 실체는 아직 미궁 속… 박, 검찰 서면조사 불응 답보상태
‘정윤회 동향’ 문건을 둘러싼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정윤회씨의 진실공방 이면에는 조 전 비서관과 가까운 박지만 EG 회장의 인맥과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문고리 권력’의 파워 게임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시각이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막후의 양대 파워 그룹이 그간 곳곳에서 충돌을 빚으며 치열한 암투를 벌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5월까지 박지만 회장 미행설, 정씨 동향 문건 작성, 문건 작성 주체인 박관천 경정과 조 전 비서관 경질 및 문건 유출 등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승승장구하는 듯이 보였던 ‘박지만 인맥’은 올해 들어 퇴조가 뚜렷해졌다.
이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로 막으면서 인사 전횡을 부린 결과라는 게 ‘박지만 인맥’의 불만이다. 박 회장 측도 이들 때문에 자신과 가까운 이들이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인방 측은 “우리는 대통령의 뜻과 의중을 실행하는 비서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친인척의 국정 개입을 경계하는 박 대통령의 조치가 오해를 불렀다는 얘기인 셈이다. ‘친인척 경계’와 '측근의 국정 농단’을 두고 충돌한 양 측의 대결은 결국 검찰수사로 매듭을 지을 수밖에 없게 됐다.
● ‘정윤회 문건’의 진위는? “문건 조작” 대 “6할 진실”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정윤회 동향’ 문건의 핵심 골자는 3인방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가 이미 절연했다는 정윤회씨의 막후 지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3인방이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비선과 함께 국정을 농단한다는 얘기다. 문건은 일단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박지만 인맥’의 의심과 불만이 농축돼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박 회장도 3인방의 배후에 정씨가 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정씨나 3인방은 “터무니 없는 음해다”고 반박한다. “만남 자체가 없었다. 만났다면 통화기록이나 CC(폐쇄회로) TV에 다 남는다”며 문서 자체가 조작이란 주장이다. 반면 조 전 비서관은 “6할 이상은 진실”이라며 “문건 내용은 실제 모임 참석자로부터 나온 얘기라고 보고 받았다”고 주장해 박 경정이 들었다는‘모임 참석자’ 규명이 검찰 수사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박지만 미행설’의 진실은? 정씨는 “조작”이라고 부인
두 그룹의 갈등설이 처음 수면위로 드러난 것은 시사저널이 지난 3월 박 회장의 말을 인용해 “정씨가 나를 미행했다”는 의혹을 보도하면서다. 이에 대해 정씨는 “허위보도”라며 “보도 이틀 후 박 회장을 찾아가 ‘(미행한 사람의) 자술서가 있다는데 보여 달라’고 했는데도 응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회장 측의 공식적인 대응은 아직 없다. 정씨가 지난 7월 시사저널 기자 3명을 고소하면서 검찰이 박 회장 측에 서면 조사서를 보냈지만 이에 응하지 않고 있어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나 시사저널이나 박 회장 주변에서는 “박 회장 미행과 관련한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행의 실체는 불분명하지만, 박 회장 측이 문고리 권력의 견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 문건 유출의 진상은? 유출자 및 후속 조치 논란 팽팽
‘문건 유출’을 두고서는 양측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문고리 권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셈이 된 청와대는 정씨 동향 문건 작성자인 박 경정이 제 3자를 통해 유출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반면 박 경정은 “문서가 도난 당했다”며 강력 부인하고 있고, 조 전 비서관도 “지난 5~6월 민정에 올라간 문건에는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범인으로 지목돼 있다”고 구체적인 정황까지 밝혔다.
여기에 세계일보가 “박 회장이 지난 5월 자신에 대한 감찰 보고서를 포함해 대량의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사실을 알고 김기춘 비서실장과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에게 진상규명 및 보안점검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한 것도 의문투성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전면 부인했고 남 전 원장도 “금시 초문”이라고 밝혔다. 세계일보의 보도는 박 회장 측이 감찰 문건을 유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량의 문건 유출을 청와대에 알렸으나 ‘문고리 권력’이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고 묵살했다는 함의를 깔고 있다.
청와대 박지만 인맥의 잇단 낙마는 문고리 권력의 반격?
정씨 문건 작성 및 보고 당사자인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 교체 사유도 주장이 엇갈린다. 박 경정은 지난 1월 문건을 작성, 조 비서관에게 보고한 뒤 한 달 만에 경찰로 원대복귀 조치된 후 일선서 정보과장으로 좌천됐다. 문건 내용을 김기춘 실장에게 직접 보고했던 조 전 비서관도 4월에 경질됐다.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은 자신들의 경질에 대해 ‘정씨 뒷조사를 하다 청와대 3인방 등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것이 아니냐’고 보고 있다. 특히 조 전 비서관은 올해 3월 시사저널의 박지만 미행설 보도 이후 정씨가 자신에게 접촉을 시도했으나 이를 거절한 뒤 며칠 만에 경질됐다고 주장했다. 조 전 비서관이 지난 4월 10, 11일 걸려온 정씨의 전화를 받지 않자 정씨 부탁을 받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정윤회씨) 전화 좀 받으시죠’라고 조 전 비서관에게 전화를 건 것은 양 측 모두 인정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 경질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 유출의 책임 차원이라는 게 청와대 측 설명이다. 박 경정 경질과 관련해서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최근 여권 인사에게 “지라시 수준의 정보를 공식 문건에 담아 보고하는 걸 보고 어떻게 더 일을 시키나. 내 선에서 묵살하고 그만 두게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만 인맥’이 ‘문고리 권력’을 향해 음해성 투서를 했다고 본 것이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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