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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모욕죄 형사처벌 폐지해야

입력
2015.05.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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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댓글 고소 처리 방안 실효성 낮아

미국은 명예훼손 형사소송 거의 없어

표현자유, 정치 악용 방지 위해 없애야

지난 달 13일 대검찰청은 일명 ‘인터넷 악성댓글 고소사건 처리방안’을 시행했다. 다수의 악성 댓글작성자를 고소한 후 부당하게 합의금을 요구할 경우, 공갈죄 또는 부당이득죄로 형사처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허위 인터뷰 논란을 일으켰던 당사자가 고소남용 사례자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1,500여명의 악플러를 모욕죄로 고소한 후 거액의 합의금을 종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모욕죄는 명예훼손죄와 더불어 형법상 ‘명예에 관한 죄’로 분류된다.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공연히’는 세 명 이상의 불특정 다수 앞을 의미한다. 또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가 제기되는 친고죄이다. 단순한 욕설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할 경우 명예훼손죄로도 처벌될 수 있다.

대검찰청의 처리 방안은 실효성이 낮아 보인다. 공갈 또는 부당이득 범죄 성립조건을 충족시키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재물의 교부 또는 재산상 이익 취득을 위한 협박이 필요하나 공소제기를 협박으로 보기는 어렵다. 후자의 경우,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을 취득해야 하나 법원 판결을 부당이익으로 볼 수는 없다. 교육 조건부 고소각하 또는 기소유예 처분 방침에도 문제 소지가 있다. 검찰이 고소 남용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 형평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습 악플러에 대한 구속수사 일괄 방침은 불구속수사의 원칙에 위배되고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

미국에서는 모욕 또는 명예훼손 행위에 대한 형사소송은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민사소송으로 진행된다. 미국 소송은 크게 세 가지 면에서 다르다. 첫째, 진실은 위법성을 조각한다.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일괄 처벌하는 국내법과는 다르다. 둘째, 형사처벌 조항 자체가 없거나 사실상 사문화 됐다. 미국 연방헌법상 보장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함이다. 셋째, 원고가 허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진다. 피해자가 공무원 또는 공인의 경우에는 악의를 입증해야만 승소할 수 있다.

독일과 일본은 모욕죄를 독립범죄로 처벌한다. 전자의 적용범위는 상대적으로 좁다. 쌍방모욕의 경우는 각하된다. 후자의 형량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최고형이 30일 미만인 구류이다. 국내법 상 최고형량인 1년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명예훼손죄 경우도 국내법과 차이가 있다. 양국 모두 친고죄이다. 반면 형법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해야만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불벌죄이다. 반의사불벌죄는 친고죄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더 크다. 확실한 반대의사 표시가 없는 한 공소가 제기ㆍ진행되기 때문이다.

또한, 예외조항이 폭넓게 적용된다. 독일의 경우 진실한 사실은 위법성을 조각하고, 제3자 전파 가능성은 구두가 아닌 서면 전파에만 적용된다. 반면 국내법은 전파 방식과 무관하게 적용된다. 일본의 경우, 기소되지 않은 범죄행위 관련 사안을 공공의 이익으로 간주한다. 국내법에서는 피고가 방어논리 차원에서 공익성을 입증해야 한다. 또한 일본 형법은 공무원 또는 선거출마자에 대한 명예훼손죄는 진실한 사실로 밝혀질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 반면 국내법은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처벌하고, 허위사실은 가중처벌한다.

모욕죄 고소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모욕죄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냉각 효과를 최소화하고, 나아가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부당한 고액의 합의금을 목적으로 피고소인을 협박하는 ‘기획 고소’의 폐단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다. 모욕죄에서 나아가 명예훼손죄 형사처벌 폐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안준성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ㆍ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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