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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떡국의 변신, 별이 되고 꽃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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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떡국의 변신, 별이 되고 꽃이 되다

입력
2015.02.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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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 먹고

일가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련만

나는 오늘 때묻은 입든 옷에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혼자 외로이 앉어 이것저것 쓸쓸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토막으로 외로이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느 먼 외진 거리에 한 고향 사람의 조그마한 가업집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이 집에 가서 그 맛스러운 떡국이라도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한다

- 백석 ‘두보나 이백 같이’ 일부

타향에서 명절을 맞은 시인의 쓸쓸함이 마지막으로 당도한 곳은 떡국 한 그릇이다. 새 옷, 새 신과 기름진 고기로 고향의 풍요로움을 추억하던 시인의 마음이 결국 떡국으로 안착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 한국인의 모든 소울 푸드 중에서도 떡국은 특별하다. 왜, 언제부터 떡국을 먹었는지 그 유래는 분명치 않지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같은 옛 문헌들은 한결같이 떡국을 세찬상에 빠져선 안 될 음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복은 뜸해지고 세배의 순서도 희미해졌지만 떡국은 굳건히 살아 남았다. 오히려 변하는 사회상에 맞춰 각양각색으로 진화 중이다. 오늘 한국 사회 곳곳의 허기를 채워주는 떡국의 다채로운 변신에 대하여.

소고기도 없고 지단도 귀찮다

1인가구를 위한 떡만두 달걀탕

연애와 결혼의 권리를 박탈당한 대한민국 청춘들에게도 새해를 뜨끈한 떡국으로 맞을 권리는 있다. 문제는 귀찮다는 것. 내 배 하나 채우자고 몇 십분 간 육수를 우리고 달걀 지단을 부치느니 가까운 분식집으로 향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건 자명하다. 그러나 새해를 조미료의 고독한 맛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다면, 간단하면서 푸짐한 물만두 달걀탕을 시도해 볼 만하다.

‘1인 가구 맞춤요리책’(레시피팩토리)에 소개된 물만두 달걀탕은 떡만둣국과 달걀탕을 합친 것으로, 지단 만들기의 수고로움을 달걀탕으로 대신한 재기가 돋보인다. 부드러운 달걀탕 안에 떡이나 만두를 넣어 취향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홀로 맞는 새해 아침, 한 냄비 가득 달걀탕을 끓여 아침엔 밥과 함께, 점심엔 떡을 넣어 떡국으로, 저녁엔 떡과 만두를 모두 넣어 떡만둣국으로 하루 종일 푸짐하게 먹어 보자.

재료: 냉동 만두, 떡국떡, 달걀, 양파, 대파

(국물용) 멸치, 다시마

만드는 법:

1. 떡은 미리 찬물에 담가두고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 육수를 만든다.

2. 끓는 육수에 다진 마늘과 양파를 넣고 끓어 오르면 약불로 줄여 2분 더 끓인다.

3. 만두와 떡을 넣고 익으면 그릇에 풀어 놓은 달걀을 둘러 넣는다. 대파, 소금을 넣어 한소끔 더 끓인다.

마음은 경건하게, 몸은 건강하게

향기로운 사찰 냉이 떡국

육식을 금하는 절에서는 소고기 대신 채소 우린 물로 떡국을 만든다. 그러나 아무 채소나 우려도 되는 건 아니다. 사찰음식 연구가 정재덕씨는 채식과 사찰음식의 가장 큰 차이점을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 등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쓰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신채의 강한 향이 재료 본연의 맛을 가리고 자극적인 맛으로 위에 부담을 줄뿐 아니라, 특유의 “뻗치는 힘” 때문에 인간으로 하여금 정서적 동요를 일으키기 때문이란다. 혈기 등등했던 지난 날을 반성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고자 한다면 사찰 떡국에 주목해보자.

‘우리집 사찰음식’(레시피팩토리)에서 소개하는 냉이 떡국은 말린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진하게 우려 만든 국물에 냉이의 향을 더한 독특한 떡국이다. 냉이 고유의 깊고 그윽한 향은 소고기 육수에 대한 아쉬움을 떨치고도 남는다. 냉이의 특이한 향이 싫다면 다른 채소로 대체할 수도 있다. 쑥을 넣으면 쌉싸름한 쑥떡국, 미나리를 넣으면 향긋한 미나리 떡국이 된다.

재료: 떡국떡, 냉이 4줌, 당근, 국간장, 소금

(국물용) 말린 표고버섯, 다시마

만드는 법:

1. 말린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우려 육수를 만든다.

2. 냉이는 시든 잎을 떼고 작은 칼로 잔뿌리를 긁어내 손질한 뒤 볼에 냉이가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살살 흔들어 여러 번 씻어낸다.

3. 육수에 떡을 넣고 끓이다가 냉이와 채 썬 당근, 표고버섯, 다시마를 넣고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한다.

100세 시대를 대비한다

성인병을 예방하는 약초 현미 떡국

몇 년 전부터 들리기 시작한 ‘100세 시대’라는 말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연령대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수명의 양과 질이 반비례할 것이란 불안이 싹튼다. 오래 살 수 있다고 해도 반평생을 병마에 시달리면 의미가 없다. 고혈압, 당뇨병, 비만, 고지혈증 등 각종 성인병 예방에 단골로 등장하는 현미는 질 좋은 삶을 다짐하는 새해 아침상 재료로 제격이다.

자연요리연구가 문성희씨는 ‘평화가 깃든 밥상 3’(샨티)에서 현미 가래떡과 약초 우린 물로 맛을 낸 현미 떡국을 선보였다. 20년 간 요리학원 원장으로 있던 문씨는 어느 날 자연식으로 마음을 돌려 괴산 생태공동체에서 자연식 연구가이자 단식 캠프 강사로 일하는 중이다. 모든 양념을 직접 만드는 문씨는 고기 육수 대신 약초 우린 물을 쓰면 혈행을 개선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건강 떡국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오가피, 감초, 구기자, 황기, 당귀, 둥글레 등 생협이나 농협에서 구할 수 있는 어떤 약초도 좋아요. 몸 속 노폐물을 씻어주고 순환을 도울 뿐 아니라 맛도 구수하고 달착지근해져요.” 약촛물은 약초 80g에 물 5l를 부어 15분 간 끓여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너무 오래 끓이면 쓴 맛이 날 수 있으니 우리는 시간을 잘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재료: 현미 떡국떡, 배춧잎 2장, 느타리 버섯, 간장, 깨소금, 들기름

(국물용) 황기, 둥글레, 당귀 등 약초 4~5종

만드는 법:

1. 배춧잎은 2㎝ 길이로 썰고 느타리 버섯은 결대로 찢는다.

2. 약초 우린 물에 배춧잎, 버섯을 넣고 끓으면 떡을 넣어 익힌다.

3. 간장으로 간하고 깨소금과 들기름으로 마무리한다.

어른도 아이도 맛있게

눈과 입을 사로잡는 어묵 떡국

늘 흥미거리를 좇아 다니는 천방지축 아이들을 담박한 떡국 그릇 앞에 앉혀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음식 블로거로 활동 중인 채남수씨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선 일단 시각적으로 화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먼저 눈으로 음식을 먹고 그 다음에 맛을 봅니다. 유아식에서 이유식으로 넘어가면서 많은 엄마들이 ‘어른 음식에 간만 덜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때는 아이의 평생 식습관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는 저서 ‘아이가 잘 먹는 유아식’(경향BP)에서 아이를 위한 어묵 떡국을 제안했다. 별, 꽃, 하트 모양의 예쁜 떡으로 눈길을 사로잡고 어묵의 감칠맛으로 입을 사로잡는 것이 순서. 떡의 기름기는 깨끗이 씻어내고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육수에 멸치와 다시마 외에 건새우를 첨가한다. 아이의 눈을 즐겁게 하는 예쁜 떡국으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새해 밥상을 만들어 보자.

재료: 어묵, 떡국떡, 무, 다진 마늘, 실파, 소금, 후추

(국물용) 다시마 2장, 멸치, 건새우

만드는 법:

1. 무와 어묵을 3㎝ 길이로 썬다.

2. 다시마, 멸치, 건새우로 우린 육수에 무와 다진 마늘을 넣어 끓인다.

3. 무가 익으면 떡과 어묵을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한 뒤 잘게 썬 실파를 넣어 한소끔 더 끓인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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