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황영식
주필

등록 : 2017.06.29 18:10
수정 : 2017.06.29 18:10

[황영식의 세상만사] 고정 권력화하는 ‘시민(市民)’

등록 : 2017.06.29 18:10
수정 : 2017.06.29 18:10

역사배경 따른 뜻과 쓰임새 다양해

시민단체 특별한 국민의 신뢰 누려

이제는 ‘재야(在野)’ 뿌리 잊을 만해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 가운데 그 뜻을 꼼꼼히 따지고 들면, 돌연 윤곽이 흐려지는 말이 한둘이 아니다.

‘시민(市民)’도 그 하나다.

가장 간단한 쓰임은 ‘○○시’라는 특정 행정구역의 주민(住民)이다. ‘○○시’가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도시라면 ‘주민(Resident)=시민(Citizen)’이다. 그런데 지방 소도시, 특히 도농(都農) 복합지역의 농촌지역 거주자는 ‘주민’이되, ‘시민’이기에는 어색하다. ‘시민’이란 번역어에 어원인 ‘도시(City)’의 냄새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도시’ 냄새는 ‘시민권(Citizenship)’이란 말에서 한결 짙다. 이때는 ‘시민=국민(Nation)’이고, ‘시민권=국적(Nationality)’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노예나 외국인과 구별되는 공동체 구성원을 시민이라고 부른 게 연원이다.

한편으로 프랑스 혁명을 ‘시민혁명’이라고 부를 때의 ‘시민’은 주민도 국민도 아니다. 당시 혁명은 유산층(Bourgeois)이 주도했고, ‘시민혁명’은 ‘부르주아 혁명(Bourgeois Revolution)’의 번역어다. 따라서 ‘시민=부르주아’이고, 최근의 의미로 말하면 ‘시민=부자’이다. 요즘은 거의 쓰이지 않는 ‘소시민(小市民=Petit-bourgeois)’의 ‘시민’도 같은 뜻이었다. 이런 ‘시민’의 쓰임새는 프랑스 혁명 이후로는 사실상 사라졌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국내 ‘시민단체’의 ‘시민’은 어떤 뜻일까. 부르주아나 주민이 아님은 분명하다. 시민단체 집회에서 자주 거론된, 헌법 제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그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를 함께 떠올리면 당연히 국민일 듯하지만, 그도 아니다. ‘국민’의 집합성과 총체성, 국가로부터 존립 근거를 보장받은 듯한 어감 때문인지, 시민단체 스스로가 거부감을 보인다.

주권자(=국민)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공무원이나 군인이 아닌 ‘민간인(Civilian)’이란 자리매김, 동원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는 주체의식을 더해야만 의미가 비슷하게 살아난다. 나아가 이념이나 정치성향도 특별하다. ‘태극기 집회’는 시민단체가 아닌 ‘우익단체’가 주도했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규모나 활동 내용도 특별하다. 구미나 일본 등 선진국의 시민단체가 소규모 주민ㆍ사회운동 단체이거나, 규모가 전국적으로 커지면 대개 비영리기구(NPO)나 비정부기구(NGO)와 겹쳐진다. 이와 달리 한국의 시민단체는 전국적 조직을 자랑하면서도 NPOㆍNGO 성격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치ㆍ사회적 발언권이 외국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기도 하다. 그 배경은 권위주의 시절의 ‘재야(在野)’ 민주화 운동이 시민운동의 가장 굵은 뿌리였던 데서 찾을 수 있다.

시민단체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이 외국과 판이한 것도 그 때문이다. 구미나 일본판 위키피디아는 한결 같이 ‘시민들이 자신들의 이익 향상, 생활 향상 등을 위해 단결해 사회를 움직일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구성한 단체’, 즉 이익단체의 하나로 본다. 이를 옮기면서 위키백과가 ‘공공선’을 최종 목표로 추가한 것은 물론이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발전을 위해’라고 활동 목적을 소개한 자료도 숱하다. 2009년 리얼미터의 신뢰도 조사에서 42.3%의 지지로 2위 종교단체(7.6%)와 35%포인트 가까운 차이로 시민단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한 데서도 그런 국민 인식이 엿보인다.

민주화는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상황이 제도화를 통해 정상화하는 과정이다. 정상화는 필연적으로 일반화, 보편화와 통한다. 민주화 30년을 거치며 한국사회에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잇따랐지만, 시민단체의 특수성은 희석되기는커녕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보수정권이 몰락하고 진보정권이 들어선 이후, 최근의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공사 중단에서 보듯, 시민단체는 사실상의 정책결정 주체가 되어 가고 있다. 견제 수단이라고는 시민단체의 자기절제뿐이어서 더욱 답답하다.

주필 yshwang@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전국지자체평가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