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사후관리 안 되는 '초중고생 정신건강 조사'

입력
2016.02.01 20:33
0 0

엄마는 “괜찮다 전하라”하고, 교사는 “나몰랑”

정신적 문제 발생해도 부모 거부하면 ‘무용지물’

비밀유지 필요 불구 일부 교사 학생정보 유출도

일부 학생 ‘왕따’ 두려워 검사 조작…사회인식 개선도 필요

2013년부터 전국 전국 초ㆍ중ㆍ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가 학부모의 치료거부와 일부 교사의 관리부실, 학생들의 검사조작 등 문제로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티이지미뱅크
2013년부터 전국 전국 초ㆍ중ㆍ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가 학부모의 치료거부와 일부 교사의 관리부실, 학생들의 검사조작 등 문제로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티이지미뱅크

교내 구타와 자살 등 사태를 막기 위해 2013년부터 전국 초ㆍ중ㆍ고 학생을 대상으로 해마다 실시되고 있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가 학부모의 치료 거부와 교사의 전문성 부족, 학생들의 검사결과 조작 등 문제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검사 결과의 유출에 따라 일부 학생들의 경우 ‘정신병자’로 낙인 찍히는 등 후유증도 커, 개선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는 전국 초ㆍ중ㆍ고 학생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검사로, 2006년 학교보건법 개정에 따라 전국 96개교를 대상으로 2007년에 시작됐다. 교내 구타, 자살 등 정신적 이상 상태에 따른 각종 사건사고의 발생을 막자는 게 도입 취지다. 2012년 12월 대구 D중학교에서 같은 반 학우들에게 물고문 구타 금품 갈취 등 상습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권모 군 자살사건을 계기로 2013년부터는 전국의 초등학교 1ㆍ4학년, 중ㆍ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해 전수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내 아이가 그럴 리 없다” 학부모들 치료 거부

문제는 온라인(1차)검사를 통해 ‘일반ㆍ우선 관심군’으로 선별된 학생들 관리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림대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전국 초ㆍ중ㆍ고 학생 중 15만2,640명(7.2%)이 전문기관 상담 등 2차 검사가 필요한 일반관리군이고, 4만6,104명은 병ㆍ의원 등 전문기관의 치료와 상담이 필요한 우선관리군인 것으로 각각 집계됐다.

‘관심군’으로 분류된 학생들의 사후관리가 힘든 이유에 대해, 교사들은 학부모의 무조건적인 치료거부가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말한다. 1차 검사를 통해 관심군으로 선별된 학생들은 해당지역 Wee센터, 청소년상담센터,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전문기관을 방문해 2차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학부모들이 “내 아이가 그럴 리 없다”면서 전문기관 상담 자체를 거부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학부모들의 무조건적인 치료거부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A양 사례로, A양은 집에서 전기줄로 목을 감아 자살을 시도했다. A양의 부모는 A양이 왜 자살을 시도했는지 알 수 없었다. 원하는 것은 뭐든 해줬기 때문이다.

A양은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통해 우선 관심군으로 분류돼 학교에서 전문기관 상담과 치료를 권유 받았지만 A양의 부모는 치료와 상담을 완강히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A양 엄마는 담임교사에게 “우리 아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정신병 환자로 취급 하냐?”며 막말을 퍼부었다. 자살시도 후 A양은 엄마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찾았지만 A양 엄마는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 자살을 시도한 것”이라면서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주면 자살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아이를 데리고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A양 사례처럼 학부모가 상담과 치료를 거부하면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학교보건법 상 학교에서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돼 있지만 학부모 동의가 없인 전문상담기관과 의료기관으로 보낼 수 없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가 정신적으로 힘들어 상담이나 치료를 원해도 학부모가 거부하면 그만”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또 다른 교사는 “자녀문제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하는 강남지역 학부모들이 상담이나 치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고 현실을 전했다.

아이의 정신건강에 적색신호가 들어온 것은 아이 뿐 아니라 가족모두의 문제라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지적한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정신적으로 취약한 아이에게 가장 먼저 정신적 문제가 닥치기 때문이다.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아이들도 부모의 양육태도가 달라지면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부모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모르고 무조건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믿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생정보 유출…전문성 결여된 교사도 문제

일부 교사에 국한된 문제이지만, 검사 후 부실한 사후관리도 문제다.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는 철저한 비밀유지가 필수인데 이를 어기는 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교사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이다. 지난해 교사로부터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정보가 다른 학부모에게 유출돼 전학을 선택한 B씨는 “우리아이가 관심군으로 분류됐다는 정보를 교사에게 들은 학부모가 다른 학부모들에게 소문을 내 결국 전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익명의 한 학부모는 “아이가 없는데 담임교사가 ‘누구누구랑 같이 공부하고 싶지 않은 사람 손들어 봐!’라고 말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잠이 오지 않았다”면서 “이럴 거라면 왜 검사를 해서 아이를 정신이상자로 몰아버리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교사들의 안일한 대처가 낙인효과라는 부메랑이 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문성 결여, 결과통보에 대한 후유증 때문에 교사에 의한 사후관리가 부실화되고 있다고 원인을 지적한다.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담임교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신과적 영역에 대한 부담감이 커 보건ㆍ상담교사에게 미루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결과통보에 따른 후유증도 문제다. 단순 통보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의사냐”라는 학부모들의 반문과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수업 외의 과도한 행정업무로 인해 교사들이 전문성을 기르기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면서 “교육청에서도 올해부터 연수 및 사례발표 등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초ㆍ중ㆍ고생 대상의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집중력이 부족하고 학업성적이 나쁘면 무조건 ADHD질환을 의심하는 사회적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초ㆍ중ㆍ고생 대상의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집중력이 부족하고 학업성적이 나쁘면 무조건 ADHD질환을 의심하는 사회적 풍토가 개선돼야 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정신적 문제가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문제를 은폐하려는 학생들도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은폐 사례는 중ㆍ고등학생에서 많다. 초등학생들은 부모가 검사에 개입하지만 중ㆍ고등학생들은 스스로 설문에 답하는데 관리군으로 분류되면 부모에게 통지되는 것은 물론 학교 상담에 응해야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정신 질환자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조기개입을 통해 학교폭력, 자살 등을 예방하겠다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Wee센터의 한 상담사는 “관리군으로 분류된 학생들 중에는 상담을 통해 정신적 문제가 없음이 밝혀졌는데도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상당하다”면서 “검사의 한계를 인정하고 문제 보완에 나설 때가 됐다”고 했다.

2013년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

자료: 한림대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회적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것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이다. ADHD에 걸린 아이들은 주의집중이 어렵고, 교사가 문제를 지적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말이나 행동도 많아 수업에 방해가 된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는 이런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을 ADHD 환자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ADHD 질환이 없어도 기질적으로 남과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면서 “이런 아이들도 교사와 부모가 관리를 잘한다면 문화ㆍ예술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뮤지컬 ‘캣츠’와 ‘오페라 유령’ 등의 안무를 맡은 질리안 린(Gilian Lynne)의 사례는 학교와 부모가 정신적 질환이 없는 아동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영국 런던의 한 정신과병원. 의사를 찾아온 어린소녀와 엄마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소녀는 주의산만, 학업부진 등의 이유로 정신과병원을 찾았다. 모녀를 상담한 의사는 소녀의 엄마에게 “옆방에서 상담검사를 이야기하자”면서 아이를 검사실에 대기시켰다. 검사실에 혼자 남은 소녀는 의사가 커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쿵쾅거리는 소리에 옆방에 있던 의사와 소녀의 엄마가 검사실로 달려왔다. 의사는 “이 아이는 행동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춤꾼”이라면서 예술학교 전학을 권했다. 질리안 린은 회고록에서 “공립학교에서 공부를 못하는 형편없는 아이였지만 예술학교에 진학한 후 몸으로 말하는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질리안 린처럼 일반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우리교육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마음드림의원 원장)는 “정신질환자가 아니라 기질적으로 다른 행동과 사고를 하는 아이들도 관리를 잘한다면 성장해 사회를 이끌 재목이 될 수 있다”며 “수업성적이 나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덮어놓고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현정 전문의는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엄청난 학업량을 소화해야 하는 게 현실인데, 학교와 학원에서 아무런 반응 없이 묵묵히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 어쩌면 정상이 아닐지 모른다”면서 “입시위주 교육시스템 개선이 병행돼야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