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미국 요구의 첫번째 조건인 ‘완전한 비핵화’를 전 세계에 선언하면서다. 북미 간 물밑 접촉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워싱턴에서는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양측의 의견 접근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비핵화 담판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북미 비핵화 담판의 장밋빛 전망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도하고 있다. 회담 준비차 극비 방북했던 폼페이오 장관은 취임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 만났을 당시 CVID 방법론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했다”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진짜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낙관적 전망을 나타냈다. 대북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은 그 동안 주장해온 ‘리비아식 해법’의 변화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그 역시 취임 후 첫 인터뷰에서 ‘선 포기 후 보상’으로 요약되는 가장 강경한 비핵화 해법인 리비아식을 여전히 강조하면서도 “리비아 프로그램은 (북한보다) 훨씬 더 작았다”고 덧붙였다. 리비아에 비할 바 아닌 북한의 핵 규모를 감안할 때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북미 비핵화 담판에서 가장 큰 난제는 방법론 차이다. 미국이 ‘빅뱅식’의 일괄타결을 요구하는데 대해 북한은 단계적ㆍ동시적 방안으로 맞서 있다. 하지만 최근 미 워싱턴 정가의 기류가 다소 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29일 온라인 기사에서 “정부 관계자들이 2년 기한의 핵 폐기 방안으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핵무기의 완전 폐기 시점은 비핵화 로드맵과 규모를 정하는 핵심 요소인 만큼 이런 방향으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면 협상의 가장 큰 산을 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미국의 일괄타결 방식이나 북한의 단계적 접근법은 개념과 강조점의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은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오히려 양측 간 불신이다. 미국은 리비아식의 선 핵포기를 선호하지만 북한은 무장해제 이후 제거된 가다피 사례를 들어 강력 반발했다. 반대로 북한은 단계별 비핵화에 맞춰 제재를 축소하는 ‘이란식 해법’을 선호하는 반면 미국은 과거 북한이 국제협상을 종잇장처럼 버렸던 전례를 들어 거부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북미 간 타협점 찾기가 어렵다.
마침 워싱턴 정가에서는 북미 정상이 1~2년 시한의 로드맵에 합의하고 동결→핵시설 이전 등 폐기→검증과 사찰의 각 단계마다 보상을 제공하는 절충형 빅딜론이 거론된다고 한다. 북미가 정상회담에서 핵 폐기와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로드맵에 담는 일괄타결 방식에 합의해도 실제 폐기와 보상의 조치는 단계별로 할 수밖에 없다는 걸 미국도 모를 리 없다. 우리 정부가 제시하는 ‘일괄합의, 단계적 이행’의 방법론도 이런 현실을 고려한 절충형이라 할 수 있다. 비핵화 담판을 중재하는 입장에서 이런 절충형 방안으로 북미 양측을 설득해 최대 성과를 이뤄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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