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유모(41ㆍ동대문구 장안동)씨는 올해 만 3세 된 아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대신 사설 놀이학교인 ‘유아체능단’에 등록시켰다. 수영, 발레, 요가, 미술 등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유아체능단은 교육청으로부터 인가받은 교육기관이 아니어서 누리과정 예산 지원금도 없다. 한 달에 40만원 교육비를 내야 하지만 언제 학부모에게 부담이 넘어올지 모를 ‘보육대란’에 지친 유씨는 자신의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유씨는 “국ㆍ공립 유치원은 (맞벌이ㆍ세자녀ㆍ한부모 가정을 우대하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애당초 포기했고 집에서 가까운 사립 유치원을 알아보다가 보육대란이 터졌다”며 “지원금이 끊겨 우리에게 비용이 전가되면 누리과정 비용과 방과후 활동비를 합쳐 일반 사립 유치원도 60만원 이상은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럴 바엔 애초에 누리과정 예산 지원이 안 되는 유아체능단이 속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유치원 대신 사설 학원이나 놀이학교를 알아보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거듭된 보육대란 논란 끝에 부모들이 누리과정과 무관한 사설 기관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사설 교육기관은 그간 정부 지원금이 없어 유치원보다 가격이 높은 것이 단점으로 여겨졌지만, 보육대란 와중에 같은 값이면 특화된 예ㆍ체능이나 어학 프로그램을 가르치겠다는 인식이 고조된 것이다. 만 3세 아이를 둔 박모(36ㆍ광진구 광장동)씨도 “누리과정 지원금을 학부모가 떠안게 되면 일반 사립 유치원도 월 60만~80만원을 내고 다녀야 한다”며 “차라리 조금 더 돈을 보태 월 100만원을 주고 아이에게 바이올린, 스케이트, 원어민 회화 등을 가르치는 사설 영어유치원에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통합된 교육과정과 지원금을 제공해 미취학 아동에 대한 교육ㆍ보육의 질을 높이겠다던 누리과정 확대 취지가 보육대란의 여파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공동 육아로 보육대란에 맞서겠다는 부모들도 생겼다. 올해 만 3세가 되는 아이를 위해 집 근처 사립 유치원을 알아보다가 당분간 공동 육아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기로 했다는 성모(40ㆍ노원구 상계동)씨는 “직장에 나가지 않는 엄마들끼리 일주일에 두 번, 세 번씩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 가까운 산에 체험활동을 가거나 키즈 카페를 빌려 아이들을 돌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비싼 돈 내고 유치원에 보낼 바엔 엄마들이 힘을 합쳐 자녀 교육을 직접 책임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수 개월째 지속되는 누리과정 논란에 피로감이 쌓인 부모들의 합리적 선택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칫하다가 공교육의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규수 원광대 유아교육학과 교수(전 한국열린유아교육학회장)는 “애초 누리과정을 설계할 때는 국가가 공교육으로 유아를 책임지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시작했다”며 “보육대란으로 누리과정 이탈이 가시화될 경우 유아기 때부터 사교육 경쟁이 심해지는 등 공교육이 뿌리부터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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